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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런 국가는 절대 좋은 국가가 아닐 겁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태워 없애면서 민주화의 열망을 표출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결연하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을 뒤로 한 저항에 당시 군부독재 세력은 크게 당황했고 이 과정에서도 그들은 이 분신의 과정 뒤엔 이를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며 유서 대필 사건이란 걸 조작해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틀으려 했었습니다.
엊그제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분신했다던 고 이남종씨가 결국 안타깝게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겹쳤던 것은 당연히 내가 한국에서 있었을 때의 거리의 투쟁들, 그리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뒤섞여야만 했던 거리들, 사람들이 몸에 불을 당기면서까지 요구해야 했던 그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를 절박함으로 내몬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사람들이 해석이 분분할 겁니다. 틀림없이 옛날처럼, 그의 죽음이 내포한 의미와 그가 사회에 알리고자 했던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든 폄훼하고 축소하려는 언론들도 있을 겁니다.
한국 사회가 다시 내가 살고 있었던 그 때의 사회로 돌아갔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아프게 느껴지는 뉴스로 새해 첫날이 우울해집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경고를 날려야 할까요.
사람들이 믿었던 정치인들은 그들을 믿었던 사람들을 배신하고, 희망은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이 세상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절망의 벽을 부수고자 하는 사람들. 이남종 님의 유서엔 '국민이 일어나 주기 바란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절박했을까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새해 벽두부터 다시 웁니다. 그 아픔이, 그 절절함이... 도대체 우리는 뭘 위해 싸웠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쟁취해 시대와 나누고자 했던 그 열매를 찬탈해 간 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역사 안에서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소하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지금까지도 이런 아픔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