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기억과의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준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기억은 이와 정비례해서 점점 퇴색되어지고 그래서 언젠가는 결국 소멸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며 어느 추운 겨울날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누군가의 읊조림처럼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하루 하루 멀어질 수 밖에는 없다. 기억해야 할 것들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 사이에서 인간은 늘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 무렵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올 한 해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가며 한 해를 정리하곤 한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2013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 정치·시사 블로그를 운영중인 필자에게는 어떤 정치적 이슈들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까? 사회적 논란과 정치적 논쟁이 많았던 이슈들 중에서 올 한 해를 정리하며 필자가 꼽은 정치뉴스 TOP 10을 선정해 보았다.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올해의 정치뉴스를 연재하는 특별 칼럼을 포스팅할 예정이다. 필자가 선정한 10가지 정치뉴스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들을 함께 비교하며 이 글을 읽어나가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럼 오늘은 필자가 선정한 올해의 10가지 뉴스 중 먼저 다섯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1. 국가기관의 2012년 대선불법개입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대선불법개입을 올해의 정치이슈 중 그 첫번째로 선정하는 데에 필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마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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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뿐만 아니라 국가보훈처, 군 사이버사령부, 통일부, 안행부 등의 국가기관들이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지난 대선의 불법과 부정은 올 한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은 엄청난 사안이었다. NLL 논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논란, 국정원의 대선개입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파행, 공안정국 조성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이슈들이 이 사안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정권의 정통성에 직결되는 사안이니만큼 1년을 넘게 끌어온 첨예한 정치공방 속에서도 일정한 거리두기와 물타기 전략을 고집하면서도 , 최근 종교계의 시국선언을 계기로 점점 거세지고 있는 정권퇴진론을 차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국정원의 불법개선개입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요구는 이제 특검의 도입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출구없는 외길전략을 고수하기만 했던 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불통과 정치력 부재가 빚어낸 결과이다. 박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특검을 수용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2014년에도 이 문제는 정치 이슈의 맨 꼭대기를 차지할 공산이 아주 크다.
2.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 논란
결국 박근혜 정부는 철도, 의료, 공항, 전기, 수도 등의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를 실시할 것이라고 필자는 1년 전에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비단 필자 뿐만이 아니라 정치 시사에 관심이 있고,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꽤뚫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같은 예측을 해 왔다. 그리고 이같은 예측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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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모르고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의 탐욕이 마침내 '경제성과 효율성'이란 미혹적인 수사를 동반하며 국가의 공공재에까지 눈길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공부분에 대한 민영화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운영되는 국민 공동의 자산을 상위 몇% 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일 뿐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공재는 경제성과 효율성만으로 그 존재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다.
만약 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시장경제논리를 적용시켜 공공부문을 민영화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영국의 철도, 미국의 의료보험, 프랑스의 수도사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의 폐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민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도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는 민영화의 핵심이 결국 '경제성과 효율성'으로 가장한 미친 자본의 탐욕에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3. 박근혜 정부 인사 대참사
박근혜 대통령당선자는 자신의 첫 인사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국민대통합을 부르짖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율배반적으로 국민대분열을 일삼는 칼럼과 정치비평을 해왔던 극우인사를 대변인으로 선임했던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대통합이 결국 계층과 세대,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포용과 화합의 개념이 아니라 특정집단과 지역,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극히 편향된 개념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는 이후의 공직인사를 통해서도 여실히 입증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들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지적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일명 '밀봉인사'로 불리워졌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선임되는지 밀봉된 봉투가 열리기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밀봉인사'는 심지어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및 일반국민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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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한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의 소통 부족과 독선적인 국정운영이었다. 당시 보수신문들 조차 비판했던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및 독선'은 그러나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이는 급기야 역대 최악의 공직인사 참사를 초래하고야 만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난맥은 바로 이와 같은 대통령의 고집스런 국정운영스타일에 그 주된 원인이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 '밀봉인사', '깜깜이 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4.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파문
"그런 인물이었는지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외교중 발생한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을 접하고 보인 공식반응이다. 대통령의 발언 그 어디에도 인사최고책임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 각계각층에서 반대했던 부적격 인사를 고집스럽게 중용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전대미문의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원인 제공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공직에 몸담고 있던 한 개인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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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무책임함을 넘어 국민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창중 대변인의 진실게임, 박근혜 대통령의 성추행 인지 시점 논란 등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같은 의문점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윤창중 대변인의 방미외교 중 발생한 성추행 사건은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실추시킨 외교적 참사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 투명한 인사검증시스템이 배제된 독불장군식 인사운영은 언제든 이와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나쁜 선례로 기억될 것이다.
5. 대선공약 파기 축소 논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대한민국 보수신문들은 일제히 대선공약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논지의 사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선승리를 위해 내놓은 과도한 좌클릭 공약들이 향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에서 이들이 먼저 작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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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대선 공약들을 수정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거듭된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며 '노인기초연금공약', '4대중증질환 국가지원 공약', '경제 민주화 공약', '반값등록금 공약', '무상 보육, 고교 무상교육 공약', '상설 특검제 및 특별 감찰관제 공약', '군복무 18개월 단축 공약', '책임 총리제 및 책임 장관제 공약' 등이 수정 축소 되거나 파기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늘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언급해 왔다. 지난해 12월 17일 대선 이틀 전 충북 천안유세의 발언을 살펴보자. 이날 박근혜 당시 후보는 "지금 여러분께서 바라고 기다리는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입니까? 약속 지키고 민생을 보듬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대통령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오로지 시민만 위하는 민생 대통령,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통합 대통령,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약속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에 그토록 강조했던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그 약속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에 강조했던 원칙과 신뢰 역시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기준에 부합하는 엄격하고 명확한 '공의' 위에 세워져야만 하는 원칙, 약속의 이행이 전제되어야 하는 신뢰가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속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 필자가 선정한 올해의 정치뉴스 중 다섯가지를 먼저 살펴보았다. 내일은 나머지 다섯가지 주제를 가지고 포스팅을 이어가려 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생각과 비교해 보며 올 한해의 정치 뉴스를 정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