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받는 글은 어떤 글들일까? (논문이나 비평 등의 학구적인 글, 신문이나 정치칼럼 따위의 기사글 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글 속에 다음의 몇가지 요소들이 반드시 가미되어 있어야 한다. 타인들에게 활용가치가 있는 내용이어야 하고, 정확한 사실과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접근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글을 통해 글쓴이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한다. 활자화된 글의 성격과 실제 글을 인지하는 주체들인 독자들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위의 요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라면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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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불특정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시작하는 이 글은, 전혀 안녕하지 못한 시대와 세대를 향한 한 젊은 청춘의 작은 외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작은 외침은 어느 새 들불처럼 번져 학교에서 학교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세대의 벽을 타고 넘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공고한 시스템을 흔드는 엄청난 바람이 되어 버렸다.
볼품없고 투박하기만 한 이 글 속에는 이 아픈 시대의 냉정하고 냉혹한 현실이 녹아있고, 정치인들의 기만과 위선이 드러나 있고, 안녕하지 못함에도 침묵하고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의 현실 외면과 그들의 비겁함이 숨어있다. 이 시대와 세대를 향한 한 청년의 '안녕들 하십니까?'란 뜬금없는 질문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우리세대의 부끄러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공감받는 글의 요건들인 활용가치, 접근성, 정확한 사실과 분명한 목적, 그리고 글쓴이의 진심이 이 글을 더욱 빛나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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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글은 그 전파성이 매우 빠르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이 청년의 안부에 공감한 사람들이 화답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지 못하다'란 반응이 대세를 이룬 가운데, 이 안부 인사가 못마땅한 사람들도 이 청년의 인사에 대응을 한다. 대자보의 내용을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자보를 찢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들이며 흐름이다. 사회적 현상들에 사회구성원들은 각자의 이념에 따라, 관점에 따라 자신들의 사상을 자유의지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조정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가와 정부는 이 자연스런 민의의 표현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명시하는 이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헌법이 명시한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조차 국가와 정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제되고 통제받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헌법 제1조가 무색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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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관련하여 교육부가 중고등학교에 이에 대한 생활지도를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각 시·도교육청에 보냈다고 한다. 정부가 대자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학내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모습은 얼마전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반대한다는 견해와 맥을 같이 한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학생은 학생답게 본분인 공부에 집중해야 하고, 학내의 면학 분위기를 위해선 대자보는 용인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보장, 사회적 관념과 강제된 통념의 허구와 모순은 논외로 치고, 이와 같은 주장들에게서 발견되는 결정적 오류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인과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무지, 혹은 고의적 무시다.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의 결과에는 이를 야기시키는 선행요인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선행요인들에 대한 원인 분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사회적 제반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져 버리고 만다. '학생의 본분'과 '학내의 면학분위기'를 거론하는 자들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사회적· 집단적 통제와 강제를 선택하는 오류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사회구성원의 공감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필연적으로 사회구성원의 반발과 저항을 야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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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열풍처럼 퍼져나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중고등학생들까지 이 대열에 동참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대통령이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소중히 생각했더라면, 사회적 합의와 논의없이는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켰더라면, 국가기관들이 선거중립의 의무를 지키고 공정하게 대선을 치루었더라면, 비정규직 및 사회적 약자와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이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 그 애타는 심정을 이 세대가 헤아렸더라면,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의 냉혹한 교육현실 속에 꿈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 영혼들의 아픔을 보듬어주었더라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안부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뜨겁고 강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대자보 열풍, 아니 그 거센 광풍의 본질은 외면하고 이를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느니,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라느니 따위의 반응과 보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마땅히 해야 할 본분과 직분을 망각하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또한 그런 면에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국정원과 국가보훈처 및 군 군 사이버사령부가, 정부기관과 그 관료들이, 검찰과 경찰이 대자보 광풍을 불러 일으킨 주역이자 공범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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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은 몇가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글의 진정성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들이 글이 돋보이게 만드는 부분적인 요소들이라면, 그 중에서 진정성이야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중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 젊은 청년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안부를 물어왔다. 아마도 그는 대자보를 통해, 시국을 고민해야 하는 이 시대의 불행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가 택한 소통의 방법은 평이했고, 단순했으며 무척 투박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하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감과 무관심만을 양산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는 동력은 권력을 동반한 강압과 통제가 아닌 진정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마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대자보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생활지도 공문은 이들의 무지와 이를 감추기 위한 권력의 폭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젊은이의 진정성있는 외침에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상을,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도 동참하는 이 사회적 현상을 눈 앞에서 보고서도 이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면, 시쳇말로 이 정부 몰라도 너무 모르고, 못해도 정말 너무 못한다. 저 학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차라리 저 대학생, 중고등학생들에게 배워라.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