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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혼자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까지 부모가 자식의 안녕을 보살피고 책임지듯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보살피고 책임질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법부정선거로 대통을 훔친 다카키와 그 국기문란 집단들은 국민의 불행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국민들의 발이 되는 교통수단을 민영화 한다하고, 국민 어느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병원을 민영화 한다고 하니 매국노의 근본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몇년간 독일에 머물때 약값이 무료였다가 그 후 미국에서 약값을 내라하여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독일에서는 의과 대학의 유명한 교수와 병원에서 일하는 말단 직장인과 사는 것이 별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양쪽 으로 부터 초대받아 갔는데 유명한 교수집이 병원의 말단 직장인의 집 보다 못했다.
길거리에 있는 거지는 한명도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들은 사치하거나 흥청망청 화려하게 라스베스가스처럼 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걱정하지 않도록 혜택을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비해 자본주의 원조 미국의 생활은 불안하다. 몇 %에 속하는 부자이거나 아주 가난하여 정부에서 최소의 생활비를 받아 사는 극빈자가 아니면 말이다. 세금을 제일 많이 정부에 낸다는 중산층의 삶은 하루를 예측할 수 없는 삶이다. 퇴근 바로 몇 분전에 해고를 통보받는 경우가 허다한 미국의 직장에서 언제 나도 길거리에 내쫒기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중산층들은 자기들이 왕창 낸 세금을 가난한 사람들이 다 가져간다고 생각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은근히 적대감을 가지면서 개독교인들이 세뇌시킨 ‘게으름 피는 가난뱅이’들이라고 욕을 해댄다.
누구나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기에 병원에 대한 보험을 무리를 해서라도 들지만 한달에 나가는 보험금이 장난이 아니기에 말 그대로 등골이 휘어진다. 그래서 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바마케어로 모든 사람이 보험을 들도록 틀을 짰지만 그 나름대로 문제점이 많다.
그 비싼 보험을 들었다 해도 보험회사들의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그 행패를 저지 할 수도 없다. 보험회사와 개인 병원 업주들과의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기 보다는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시간에 맞추어 그 전에 환자를 다른 병동으로 이동시키면 의사에게 커미션까지 준다.
중환자실의 하루 방값이 아무런 치료를 안해도 15년전에 만불이라 했으니 지금은 더 높겠다. 각 제약회사들은 약을 팔기위해 음식과 많은 선물들을 병원마다 다니면서 뇌물을 주며 로비 활동을 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은 병원에서 날라온 청구서를 보고 놀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몇 십년전 나 자신도 80%를 지불해주는 의료보험이 있었는데도, 3일간 입원한 병원 치료비로 내가 지불해야 하는 20%인 5만불을 내는데 5년이 다 되어서야 완납했던 적이 있었다.
미국인과 결혼한 지인이 선생을 하면서 미국에서 40년간을 살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어떨때는 극빈자가 되어 정부에서 주는 700$~800$로 살면서 병원비 무료혜택 받으며 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개인병원이야 말로 큰 사업중에 큰 사업이기에 사람이 아플때 그 사람의 고통과 신음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 사람이 가진 보험의 가격이 얼마인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비싼 보험일 수록 잘 다루어지고 돈이 안되는 극빈자의 메디칼(정부지급)은 무시되어 버린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은 메디칼 환자를 거부한다. 그래도 법에 저촉되지를 않는다.
굶주리고 헐벗은 참혹한 땅에 의료의 참 정신을 가지고 도와주는 소수의 의사나 간호원이 있을지는 몰라도 자본주의에서는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이 물질의 가치로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서도 막 죽어가는 환자를 보험이 없다하여 쫒아낸다면 문제가 되지만 죽어가지 않는한 진통제하나 주고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정희시대에 진료비가 없다하여 문전박대하여 병문앞에서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딸 박근혜도 사악한 인간의 대명사 부친 박정희를 따라 그 시대로 되돌아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마이클 모어 가 만든 “씩코” 기록영화에서 유럽에서 하는 의료제공들이 정말 인간 세상의 단맛을 느끼게 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의사에게 전화를 하니 한 밤중에 의사가 직접 환자집을 찾아 치료를 해주고 가는 그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국가의 기간산업을 팔아 처먹고, 인간의 기본인 의료혜택을 민영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서 속히 저 괴물 7푼이와 그 무리들을 뿌리채 뽑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