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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이제 겨우 엿새 앞둔 날, 변함없이 엄청난 소포와 우편물을 나르지만, 오늘은 믿을만한 보조 우체부 친구가 제 우편물의 한 시간 분을 가져갔고, 소포의 절반 이상을 역시 믿을만한 동료가 가져가 대신 배달해 줍니다. 그래서 꽤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늘 점심 먹는 곳에 들어와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 들어왔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영화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가지로 상영 전부터 화제가 됐던, 그래서 관심이 갔던 영화입니다. 예고편만 봐도 눈물이 울컥울컥 터져나오던 영화. 만일 이곳에서도 개봉이 된다면 열 일 제쳐두고 가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섞여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 할 것입니다. 제가 정말 그리워하는 것은 그래도 상식이 어느정도 통하던 시대가 그립다는 겁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도입, 확산과 기업들에게 더 큰 권력을 넘겨준 그의 허물은 분명히 짚어져야 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과 실패 자체를 평가하기 이전에, 지금 시대와 비교해 보면 딱 답이 나오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비록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하지만, 그 과정과 동기에 있어서의 순수함 때문에 우리는 노무현을 그리워하고, 그를 그린 영화에 열광하는 것 아닐까요. 나중에 저들의 탄압에 의해 결국 부엉이바위 위의 절벽으로 내몰렸을망정, 우리는 당당히 귀향해서 "야, 기분좋다!"라고 외칠 수 있었던 그를 그리워했던 것 아닙니까.
영화는 감정이입의 도구이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아마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을 대한민국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스트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앉혀야 할 지를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하게 될 것입니다.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이, 학력 낮은 속물적 변호사로부터 점점 인권변호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이 영화에서 우리는 '드라마'를 볼 것입니다. 그것도 실재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을. 그리고 우리는 지금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이른바 '일베 별점 테러' 같은 것을 모두 딛고 첫날 상영에서 예매 1위를 했다고 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게 민심일 거라고. 이 영화를 보며 노무현을 떠올리게 만든 것은, 그 누구보다도 이명박근혜 정부라고. 그들의 실정,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독재의 망령이 더 노무현이란 인물을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그것이 그를 부활시키고 있다고.
겨울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겨울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동설한의 아래서도 새싹은 꿈틀거리며 봄을 맞을 준비를 하게 마련입니다. 겨울에 잘 밟아 준 보리들이 새싹을 틔우듯, 우리는 결국 언젠가 민주주의의 봄을 다시 피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아마 노무현을 제대로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정의가 제대로 열매를 맺는 때가 오기를 바라면서, 만일 미국에 이 영화가 들어와 상영됐으면 하는 생각 간절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