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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아들아 미안" 피눈물 나는 유서벌써 한달 전이다.여섯살때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무려 25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오던 아버지가 동반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공업용 가스충전소 배달기사로 겨우 생계를 꾸려 오면서도 오직 아들이 깨어날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부인과 함께 기울인 부자지정은 벼랑끝에 몰린 빈곤의 벽 앞에서 무너져버린 것이다.
지성이면 감동한다는 하늘도 고난과 한숨과 눈물로 점철된 아비의 지극정성을 끝내 외면해버렸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자리에 누운 아들에게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쉰 다섯의 아버지 김모씨가 11월 18일 스스로 불을 질러 아들을 부둥켜 안고 숨을 거둔 충남 당진의 허름한 보금자리는 말 그대로 처참하였다.
아들을 부둥켜 안은 채 숨을 거둔 김씨는 불을 지르기 전 짧은 유서를 남겼다. 집 앞에 세워둔 김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아들아 미안하다, 미안”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의 결정체인 금지옥엽 소중한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지 무려 25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하루하루를 벌떡 깨어나 일어설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으로 정성을 기울여온 간병의 끈을 놓아버리기 전 자식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정을 토해낸 것이 아니겠는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가슴속에서 솟아 오르는 통한의 눈물에 앞이 가려 겨우 "아들아 미안하다 미안" 세마디를 휘갈겨 놓고 기름통을 들고 방문을 열어 젖혔을 그 아버지의 심정 어찌 필설로 형언 할 수 있으랴.
일자리와 돈이 쏟아지는 충남 당진의 비극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국민소득이 사상최대인 2만 4000달러에 이르렀다고 자랑치는 오늘날 어떻게 이와같은 목불인견의 비극적인 참상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가 없다. 더욱이 2003~11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10.8%인 중국 못잖은 9.4%라는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충남이 아니던가.
이와같은 고속성장에 힘입어 충남은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이 2011년의 경우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6088만원으로 1위인 울산에 이어 4034만원으로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신흥부자 고을 충남에서도 떠돌이 들개 마저 기분내킬때나 날려 다니는 오만원짜리 지폐를 재미로 물어볼까 말까 한다는 우스갯말이 떠돈다는 온 천지가 돈으로 뒤덮일 만큼 천지 개벽이 일어난다는 당진땅이다.
지금 당진은 현대제철, 현대 하이스코, 동부제철, 동국제강,휴스틸,환영철강 등 대형 철강회사 6개사와 협력업체 및 연관업체 400여개사가 철강메카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김씨 부자가 유명을 달리한 송악읍과 송산면일대에 조성된 아산만국가 산업단지에 입주하려는 기업들의 행렬을 보노라면 쓰나미가 따로 없을 정도다.
1년에 입주 신청기업 100여개 가운데 싹수가 있다하여 선택받은 기업들이 구석구석 빼곡이 들어서고 있는 그야말로 돈과 일자리가 젖과 꿀처럼 흐르는 지상천국이다. 쏟아지는 일자리가 무릇 기하이며 토해내는 지방세 또한 무릇 기하인 말 그대로 살맛나는 당진이다.
이와같은 당진에서 판자촌에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주택에다 돈이 없어 자식 간병을 포기하고 뜨거운 불길 속으로 황천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믿지 못할 비극이 오천만 국민의 눈앞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더란 말이냐.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
3개월전 가난한 가정 형편에 간병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아들이 말기암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포천 사건이나 역시 병고에 시달리던 노부부가 연탄불을 피워 한많은 세상을 등진 목포 노부부 동반 자살사건도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당진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포천과 목포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게 사실이다.
복지 100조원시대가 민망한 뻥 뚫린 사회안전망그러면서도 당진에서 발생한 김씨 부자의 죽음을 잊기 어려운 것은 가시지 않은 분노때문이다. 식물인간으로 병고에 시달리던 김씨의 아들이 100조원의 복지 예산시대에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은 3년전 장애인 연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매월 11만 6800원의 장애연금을 받은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김씨 아들은 노인성 질병이 아닌 교통사고로 생긴 뇌질환인 탓에 장기 요양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당연히 요양보호사와 간호사의 서비스나 장애인 바깥출입 도우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은적도 없었다. 넉넉지 않은 가스 충전소 배달기사 소득으로 가계를 꾸리고 아들 병구완도 겨우 할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월 100여만원 정도인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와같은 김씨 가족의 어려운 형편은 송악읍사무소에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김씨가 복지혜택을 알아보고 신청을 해야하는데 그러질 않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김씨 부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한 비극은 그동안 김씨 아들처럼 중증 말기암, 치매, 뇌질환, 루게릭, 파킨슨, 만성폐쇄성폐질환등으로 집에서 가족들의 눈물겨운 간병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식물인간형 환자가정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끊을 수 없는 부모형제라는 천륜 때문에 정성껏 간병하지만 남는건 육체적, 심적 고통속에 무너지는 가정이다. 중증 식물인간 환자를 둔 가정 가운데 깨어나리라는 희망은 사라지고 더해지는 간병의 고통 앞에 비극적 선택을 한 김씨 가정을 보며 뒤늦게 나마 느끼는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증환자 간병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이 없도록 이웃사랑과 국가적 책무 다해야
공부 못해 속상해 하던 자식일 망정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는게 행복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자식복과 가정 행복의 근원이 가족의 건강에서 있음을 이번 김씨 부자의 죽음을 정부와 국민 모두가 깨닫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과 주변을 챙기는 인간애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김씨 부자의 관할 행정관서인 송악읍사무소와 당진군 충남도는 당진일대가 신흥 부촌으로 복지 사각지대가 없을 것이란 안이한 판단을 했거나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른 복지 행정소요를 감당할 복지 인력 배치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살펴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관할 행정관서는 복지 행정 인력부족과 당사자의 복지 혜택 신청유무를 말하기 전에 제구실을 다했는지를 되돌아 보고 복지행정 소요가 능력을 초과한다면 생활 행정체제인 통장, 반장, 이장 신고 책임체제를 갖추어 김씨 부자같은 재택중증 환자 간병 가정이 있을 경우 즉각 신고토록하는 것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부 또한 국가 행정,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노인성 질환에 국한된 장기 요양보험 서비스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간병제를 개선하여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특히 100조원 복지 전달실태를 면밀히 점검 분석하여 불요불급하게 낭비되는 예산을 이들 간병 고통가정에 돌려 중증환자 간병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이 없도록 국가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