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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처갓집은 충청도다. 그래서 충청도 사람들과 만날 일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적 특성이 영, 호남인들과는 무척 달라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비탈진 산에서 <“아부지이~~, 도올 굴러~가유~~~”하는 외침을 듣다가 아버지가 돌에 치여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실감날 때가 많다. 말이 느린 것만큼 행동도 느리고, 결단도 느리다. 그들은 급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손해나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영남과 호남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충청도인들은 그들 고유의 특성을 십분 살려 항상 승자의 손을 들어 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역대 독재정권의 존립 토대를 구축해 준 전력도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생존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무려 18년에 걸친 박정희 정권의 철권 독재정권이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충청도가 뒤를 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충청도 출신들은 고향인 충청도를 제외하고도 서울, 경기, 인천 인구의 25~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3분의 1인 영남 지지만으로는 박정희 정권을 유지하는 일이 절대 불가능했다.
유신독재를 타파하고, 민주주주의를 희구하던 선배들에게는 불운하게도, 박정희의 처가, 육영수의 친정이 충북 옥천이었고, 5.16 쿠데타를 주도했던 김종필의 고향이 충남 부여였다. 박정희는 영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발판으로 충청도의 보조를 받아가면서 유신 독재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충청도인들은 상대적으로 이념적인 면에 대해 관심이 적은 것 같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이념적인 가치관을 신념으로 삼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인생을 거는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이념보다는 삶 그 자체를 더 중시하는 것 같다. 즉, 이념자체 보다는 그 이념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박정희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때도 그들은 독재 잔당의 편을 들었다. 전두환에 의해 서울의 봄이 좌절된 후, 결국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3당 야합으로 충청도는 독재잔당 지지세력이 되고 말았다. 그 후에 탄생했던 김종필의 자민련을 상당수의 충청인들이 지지했으나, 독재 잔당에 대한 지지자들도 여전히 많았다.
충청권의 지지 없이는 결코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DJ에 의해 DJP 연합이 탄생했다.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총재로 단일화하고, 집권 시 실질적인 각료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갖는 실세 총리는 자민련 측에서 맡도록 한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DJ는 충청 출신 이인제 후보가 상대방 지지 충청표를 일정 수준으로 잠식한 가운데 충청의 지지로 간신히 대통령에 턱걸이 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도 충청인들 이었다. 노 대통령이 생전에 “솔직히 세종시 행정수도 공약의 덕을 보았다!”고 밝힌 것처럼, 수도를 충청도로 옮겨 준다는 공약에 대해 충청인들은 지지로 화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노무현 정신의 승리, 바보 노무현에 열광한 노사모만의 승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2007년 대선은 야권 전체가 정동영을 중심으로 뭉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정동영 후보가 형편없이 패배했으므로 충청도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
2012년 대선도 충청인들이 결정했다. 박근혜 후보는 충남에서 56.4%, 충북에서 56.2%, 대전에서 5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문재인 전 후보는 충남 43%, 충북 43.2%, 대전 49.7%에 그쳤다.
이는 박근혜 후보의 외가가 충북 옥천이라는 것도 강점으로 작용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행정 효율성을 이유로 세종시 행정수도 백지화를 기도할 때, 국회 본회의 단상에 올라 반대토론까지 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를 관철해 낸 박근혜 후보에 대한 충청인들의 보은의 결과였다.
충청인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핫바지’라고 놀림을 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핫바지가 아니다. 영호남이 죽기 살기로 싸울 때, 그들은 결정권을 쥔 채 웃으며 그 싸움을 즐긴다. “너희들 끼리 죽도록 싸워봐라. 누구든 우리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중얼 거리면서 말이다. 그리고서 그들은 실리를 챙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놈이 챙기는 격이다.
안철수 신당 돌풍이 거세다. 한국 갤럽 여론조사(11월 25일~28일 조사)에 따르면 대전·세종·충청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30%인 가운데 안철수 신당이 29%, 민주당이 10%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사실 충청인의 기질은 쌈박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만사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국회에서 진흙탕 싸움하는 것을 보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 민주당은 강경 일변도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김한길 대표는 비교적 원만한 성격인데, 대선 후유증 때문에 소신껏 민주당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민주당 지지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충청권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안철수 신당의 3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충청인들의 마음은 이미 민주당을 떠났고, 안철수 신당 지지로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충청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한번 마음먹으면 그 마음을 돌리기가 심히 어렵다는 점이다.
민주, 개혁 진영 인사들은 정치 지형을 지역 구도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을 지나치게 정치 공학적이라고 하면서 비판한다. 하지만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비율이 높아지는 한, 그들의 각종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존하는 한 지역 구도에 의한 정치 지형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안철수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충청인들의 마음을 더욱 더 붙잡을 필요가 있다. 이해타산을 따지고, 거기에다가 승자를 선택하는 현명한 판단력을 갖춘 충청인들의 마음을 붙잡을 당근들은 과연 뭘까? 물론 충청도인들의 마음을 끌어 올 수 있는 인물 영입은 필수이겠고, 그 밖의 당근들을 찾기 위해서 안철수 신당의 책사들이 쥐가 나도록 머리를 굴려야 할 때이다!
사족: 충청인들의 특성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혹시 불쾌함을 느낀 분들이 계시다면 제 소견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시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