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도 다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당함이로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토사구팽'의 고사이다. 한나라의 명재상이자 뛰어난 장수였던 한신이 자신의 처지를 빗대 인용하여 유명해진 이 고사는 원래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의 신하인 범려가 오나라를 멸한 구천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관직에서 물러나며 사용한 표현이다.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없을 때는 버리는, 인간의 비정함과 잔인함을 나타내는 고사성어인 '토사구팽'이 정치분야만큼 빈번히 차용되는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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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회 위원장은 일명 '박근혜 키즈'로 불리우며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맹활약한 새누리당의 젊은 인재들이다. 이들은 당시 새누리당이 총선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취악한 젊은층 표심을 잡기 위해 전격적으로 영입한 회심의 카드였다. 이들의 활약은 특히 지난 대선에서 빛을 발했다.
박근혜 당시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20대로부터 33.7%, 30대로부터 33.1%의 지지를 받았고, 이는 20% 후반대의 지지를 받으리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 이같은 결과는 새누리당이 젊은층 공략을 위해 영입한 '박근혜 키즈'들이 새누리당에 덧칠되어 있는 낡고 헤묵은 보수의 이미지를 덜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새누리당 역시 총선과 대선공약으로 반값등록금 및 여러가지 청년정책들을 제시하며 '박근혜 키즈'를 측면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손을 잡은 두 번의 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했다. 의회 권력도, 행정부 권력도 모두 새누리당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며 정치권력을 독점한 새누리당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다. '노인기초연금 공약', '4대 중증질환비용 전액 국가지원 공약', '경제민주화 공약', '무상보육, 고교 무상교육 공약', '국민통합·대탕평인사 공약', '군 복무 18개월 단축 공약', '상설특검제·특별감찰관제 신설 공약' 등 크고 작은 공약들을 파기 혹은 축소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습관적인 약속파기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두 번의 선거를 승리하는데 일조했던 '박근혜 키즈'와 청년세대에게도 감출 수 없는 본색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공약한 '반값등록금 공약'의 시행을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1년을 늦춘 2015년에 시행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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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늘 "자신은 책임질 약속만 해왔다"고 말해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입장을 생각해)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반값등록금 공약' 하나만 살펴봐도 대통령의 저 말이 얼마나 실없는 소리며, 허무맹랑한 지 여실히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모두 4차례에 걸친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세웠다. 그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 나가면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며 반값등록금을 시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자 이 약속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2007년 대선, 다시 5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총선에서도 이 공약은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다시 몇개월의 시간이 흐른 2012 대선에서도 '반값등록금 공약'은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등장했고 "대학 등록금 부담을 분명하게 반드시 낮추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분명하게', '확실히'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실 반값등록금 공약안도 등록금 총액의 절반을 장학금으로 확충하겠다는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반값등록금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서 청년세대들이 직면한 고민과 현실문제의 실마리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으려던 '박근혜 키즈'도 이제서야 저들의 본심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들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새누리당은 청년의 열정을 결국은 허망함으로 돌려주고야 말았다"
"4·11총선 때 있었던 열기가 식은 것 같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새누리당에 남아 있을 바른 청년이 없다고 본다" -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회 위원장
"인민은 힘들어 하는데 지도자라는 자들은 최고영도자의 심기만 생각해. 이것은 북한이야기. 하지만 북한만의 이야기인지는 미지수" -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새누리당의 총선승리와 대선승리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작정하고 내뱉은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필자는 오래 전에 이들 '박근혜 키즈'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정치인이 아님에도 정치인로서의 행보를 보여온 두 사람이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첫째,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이상과 비전을 보여줄 것인가?
둘째, 새누리당의 역사와 뿌리, 정체성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입장을 밝혀달라.
셋째, 5.16을 구국의 결단으로, 유신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인식태도를 평가해 달라.
넷째, 새누리당 의원들이 그동안 보여준 부정불법비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당연히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답을 찾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들은 행동으로, 때로는 말로 필자의 질문에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서 필자는 역사와 국가에 대한 신념과 철학, 사회 정의와 공의, 부정과 불의에 저항하는 양심, 보편타당한 원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젊은 열정과 패기로 새누리당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더니 어느새 그들은 새누리당 속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동화되어 갔던 것이다. 새누리당에게 그들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새누리당의 힘이 필요했다. 그들은 '권력'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 공생하는 관계였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키즈'의 쓴소리는 일종의 '투정'이며, '어리광'에 불과하다.
필자는 서두에 '토사구팽'의 고사를 인용했다. 그러나 이 고사는 '박근혜 키즈'의 입장을 묘사하기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키즈'는 (정치권력으로부터) '팽' 당하지도 않았고, 아직 해야할 일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많은 정치적 현안들을 새누리당과 함께 도모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 역사와 국가에 대한 신념과 철학, 사회정의와 공의, 보편타당한 원칙에 대한 명확한 기준, 그리고 무엇보다 부정과 불의에 대한 양심이 자리잡고 있지 않는 한 '박근혜 키즈'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불쾌한 일이 될 것 같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