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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이 사형제 부활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더군요. 한국은 사형제가 존속하되, 이미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최근에 어린 여학생의 성폭행 살인사건이나, 조두순 사건 등 강력 범죄들이 발생하면서 사형을 부활시키자는 공분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법무부 장관이 하필이면 선거를 앞둔 때에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모르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은, 결국은 '법적 살인'인 사형이 과연 '적정한 죄값의 치름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이것이 정치적인 결정이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 우리는 앰네스티가 '창립 이래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불렀던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인해 사형당했던 사람들의 과거가 있습니다.
물론 언론의 감시 기능이 지난 정권때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굳건한 이상 그 어두운 과거가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이라는 형벌 수단의 존속 여부를 법무부 장관의 말 한마디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에 대해선 재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저 사형 제도라는 하나의 '현존하고 있는 제도'의 계속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근의 애국조회 부활과 같은 일련의 과거로의 회귀 행태와 맞물리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저는 솔직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인권은 그 어느때보다도 신장돼 왔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번 조치와 일련의 '그 진의가 의심되는 조치'들로 희석되는 것을 보면서, 또 '용산참사'로 대변되는 이 정권의 인권이란 것에 대한 시각에 대한 회의가 거기에 섞이면서, 저는 뭔지 모를 불안감 같은 것도 느낍니다. 국민의 정서라는 것에 살짝 스며들어가는 정치적 의도. 과거에 참 많이 봐 왔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과거엔 사형이란 단어를 하도 많이 봐서 몰랐지만, 나이 좀 먹고 생각해보니 그게 과연 죄값이라는 이름으로, 제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또 가능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그 사형제도란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해 온 것을 역사 안에서 그만큼 많이 목격하고서, 이제 다시 사형이란 제도를 말하는 정권을 보게 되는군요.
앵똘레랑스의 시대의 복귀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앵똘레랑스는 결국 앵똘레랑스를 부르는 악순환만을 가져오게 됩니다. 진정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대'는 처벌의 강화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리고 실제로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도덕의 실천으로부터 생겨납니다.
범죄의 피해자가 없으려면 먼저 범죄를 막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범죄의 예방책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처벌의 강화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의 도덕률 실천,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정권은 무시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