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을 일으켰던 지역감정을 이용한 영화광고 포스터 우편물의 무게도 그렇고, 그간 쌓인 피곤도 그렇고... 이런 것 때문에 좌골 신경통이 왔는지 골반과 다리가 붙어 있는 부분이 유난히 찌릿거리며 통증이 오는 날이지만, 그래도 일단 아침에 몸을 푼다 생각하고 좀 빡세게 돌리고 났더니 약간 괜찮은 듯 합니다. 저녁엔 운동도 하고 특히 그 부분 스트렛치도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행사 준비를 위해 몇몇 분들을 만나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호남향우회 전 회장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말씀 하나가 영 마음에 그냥 남아 버립니다.
"호남이란 이름을 걸면 될 일도 안돼 버립니다. 그래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저희가 개인적으로 밀어드릴까 합니다."
호남이란 이름이 박해와 탄압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히 과거 박정희와 김대중 후보가 대선으로 붙었을 때입니다. 이때 중앙정보부는 직접 반 호남 정서를 심기로 작정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도 사실 그 뿌리는 여기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게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것이 오늘날 호남 출신 분이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숨어야 하는' 현실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것은 정말 마음아픈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름으로 진보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진보인 우리의 가슴 안에 혹시 그런 차별의식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나름으로 해 보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곳에서 이민자로서, '주류가 아닌 사람들'로서 조금씩은 차별을 당해 본 경험들이 있다고 압니다.
그러나 한국 안에서는 그같은 차별들이 더욱 지독하고 피해자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을 만들고 겪는 차별의 아픔이라던지, 그들의 죄 없는 2세들이 겪어야 하는 왕따의 모습이라던지, 이주노동자들의 아픔 같은 것은 쉽게 무시되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는 스스로 진보임을 외치는 사람들마저도 이들 이민노동자들을 자본이 고용한 주구라 하여 대놓고 무시하고 그들의 인격을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진보로서의 정체성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가끔씩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세화선생님이 전에 지적하신대로, 우리는 지독한 섬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그 분단은 우리를 섬으로 만들어 놓았고, 지리적인 섬 뿐 아니라 정신적인 섬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고립무원의 섬 안에 갇힌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 안 되는 리소스를 서로 쟁탈하기 위해 싸워 왔고, 그나마 왜곡된 역사는 거기서 만들어 놓았던 강요된 계급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시스템이 원하는 방식대로 싸울 것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그것은, 이민 노동자들 뿐 아니라 같은 민족 구성원에 대해서도 차별의 등급을 두는 더러운 시스템이 되었고, 저는 어제 신 회장님의 자조적인 말 한마디로 그것을 다시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어드밴티지입니다. 진정 '인권'이란 것을 이해하기에 우리가 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 안에서 약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겐 진정 약자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경험들을 우리의 실생활 안에 녹아내려 타민족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겸허히 운동하면서, 보다 실질적인 실천방안들을 마련하고, 진정한 연대를 위해 우리의 마음 속에 혹시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어떤 식의 차별의식이라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