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정파에 유리한 국면이나 수사.판결이면 좋아하고 자기 정파에 불리한 국면이나 수사.판결이면 비난하는 정치행태는 국가정치라고 할 수가 없다.
지위고하와 남녀노소,정파이념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과 시스템을 위반했다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고 지위적 책임을 져야 한다.
|
한비자(韓非子)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대한민국 국호와 동일한 韓나라의 사상가로서 전국시대에 법가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가슴에는 노자의 '무위자연설(하나님의 우주질서인 자연의 순리중시)', 머리에는 순자의 '성악설(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 죄)', 몸에는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術)', 신도의 세(勢)'를 조화하여 법치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 한비자다.
|
철저히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강제와 구속, 공과에 따른 상벌만이 필요하다고 본 그의 법치주의는 공자의 유가사상까지 압도하면서 중국 역대 군주들의 통치 지침이 되었다.
군웅들이 중국대륙의 천자가 되어 보겠다고 할거하던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에 韓이 낳은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통치자들의 등불이 되었다. 그러나 韓의 왕은 한비자의 경고를 듣지 않아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고 단군족의 나라 韓은 멸망하고 말았다.
진(秦) 시황제(始皇帝)는 한비자 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이를 통일국가의 정치원리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따라 한비자로 명명된 그의 저서는 당시 법가 이론의 총괄이다.
|
사회단체나 기업들이나 정당들의 초기에는 대부분의 창립맴버들은 의리와 정으로 뭉쳐 일정 부분의 성과를 이룩한다. 그러나 이후 성장과 발전과 확장을 거듭하면서 조직의 운명을 죄우하는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원칙을 수립하고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고 투명한 조직운영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김일성일가나 대형교회들이나 부패한 대기업들이나 패거리정당들처럼 부정부패비리를 낳고 마는 일가족벌-패거리 체제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후자는 반드시 몰락하게 되어 있고, 전자는 반드시 발전하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현재 국론분열적인 정쟁정치를 해소하는 길도 국가기관들과 정당들과 국민 모두 합의하여 만들어 놓은 법과 원칙과 시스템에 복종하는 길 뿐이다.
|
정치와 선거에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과 국방부가 불법대선개입을 했다면 당시 국정책임자와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 박근혜 대선캠프가 국정원에 직접 요구하고 지시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에 요구한 일이 없고, 원세훈 개인이나 이명박 지시로 국정원과 국방부가 불법대선개입을 했다면 국민 50%이상의 지지와 투표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책임이 없기 때문에 하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당시 여당 대선후보로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을 원천차단하는 국정원쇄신법안을 국회에 요구해야 한다. 불법대선개입이 명확한 댓글내용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언급없이 구렁이 담 넘어 가려다가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과 정치권의 진심성과 책임지는 자세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석열 검사문제와 관련하여 내용과 행위가 맞다 하더라도 조직의 상하질서를 파괴하며 단독적으로 행동하는 행위자는 조직규범에 따라 파면되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와 연결된 법무부에서 수사를 차단할 목적으로 윤석열 검사를 배제할 목적으로 벌인 일이다면 청와대.법무부 책임자들은 파면되야 한다. 한비자는 전국시대(BC 475~221)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다. 한비자는 유가인 순자(筍子)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나중에 순자를 저버리고 그 당시 봉건체계가 붕괴되는 상황과 보다 밀접한 이론을 가진 다른 학파를 따랐다. 자신의 충고가 한(韓)나라 왕에게 무시당하자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말솜씨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에 대해 있을지도 모를 반론에 대한 논박도 글로 썼다.
BC 221년 통일 후 시황제가 된 당시의 진나라 왕 정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BC 234년 진나라는 한(韓)을 공격했고, 한(韓)왕은 한비자를 진에 협상자로서 파견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진의 승상이자 이전에 한비자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이사(李斯)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한비자가 이심(二心)을 가졌다고 모함하여 그를 투옥시켰다. 이사는 한비자를 속여 그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했다.
역시 이사(李斯)의 시기질투와 탐욕이 낳은 아까운 인재의 죽음이였다. 만약 한비자가 진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면 진나라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오래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위대한 통치자와 나라는 위대한 홍익통치철학을 가진 인물들과 정치집단의 존재유무에 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