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최근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폐지’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논의에 불을 지피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이 지난 14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과 단체장 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아직도 우물쭈물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당론 확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게 전부다.
김한길 대표도 최근 “기초공천제 폐지는 국회의원들의 반대가 많지만 정당사상 최초로 당원투표를 통해 70%의 찬성을 얻어 정해진 사항”이라며 “민주당은 기초공천제 폐지가 당론이고 이는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으나, 실천의지를 보인 적은 없다.
당내 일부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문제를 논의해 온 국회 정치쇄신특위가 지난 달 30일 아무런 결론 없이 활동이 종료됐다. 민주당도 특위활동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정당공천폐와 관련된 법안의 개정을 논의하고 검토할 국회 내 주체가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입법권이 있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마저 미뤄지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가 끝나면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여야가 극단적인 갈등양상을 보임에 따라 특위가 구성되더라도 원활한 특위운영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정당공천 폐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민주당이 최근 서울시당 차원에서 서울지방자치아카데미 제2기 수강생을 모집, 14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4주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진행키로 한 것도 공천폐지문제가 내년 선거에 당장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 역시 마찬가지다.
새누리당도 최근 홈페이지에 '새누리 정치대학원 16기 모집' 공고문을 게재했다.
이달 20일까지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모집대상은 정치지망생과 공직선거출마희망자다. 물론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출마 희망자도 당연히 대상에 포함된다.
여야 정당 모두 정당공천폐지 문제가 사실상 물 건너갔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정당공천 폐지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당공천을 폐지하고 나면 돈 있는 지역의 토호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과자 등 부적격자들을 걸러낼 방법도 없다.
특히 지역의 특정 일부 세력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공천제가 내천으로 연결되면 그 과정에서 비리가 만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정치 신인들이나 장애인, 여성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정당공천폐지보다는 정당공천을 투명하게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나 애매모호하다.
특히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다.
정당공천을 전제로 한 선거와 공천이 폐지되는 선거는 그 방식과 전략에 있어서 서로 다른데, 어떤 방식으로 선거를 준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지도부 사이에서는 아직까지도 ‘기초의회 폐지와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유지’ 등 각종 대안이 회자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출마예정자들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질지 생각해 보았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 여야 지도부 모두 이제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차라리 ‘내년 6월 지방선거 때는 현실적으로 정당공천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라.
어차피 이루어 질수 없는 일이라면, 그 발표 시기를 앞당겨 출마예정자들과 유권자들의 혼란을 최소화 해 주는 게 바람직한 일 아니겠는가.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