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고법 형사 29부(재판장 박형남 부장 판사)가 국정원 전직 간부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물어 검찰에 공소제기를 명했다. 법원이 민주당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이종명(전 국정원 3차장), 민병주(국정원 심리전 단장) 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방침을 뒤집은 셈이다.
이는 검찰의 퇴행적 기소독점권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사안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을 사법부가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따라서 채동욱 검찰총장 지휘 하에서 진행됐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기소가 정당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를 두고 검찰의 잘못된 기소라고 압박했던 새누리당의 억지 주장에 대해서도 사법부가 쐐기를 박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법원의 이번 결정에 따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함께 관계된 두 사람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무척 궁금해지는 게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극렬 방해했던 황교안 법무장관의 그릇된 태도다. 권력은 일시적이지만 명예는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놓치고 있다. 배후에서 조종했을 것으로 관측되는 청와대는 두 말할 나위 없다.
한편 이 대목에서 또 다른 답답한 생각이 든다. 공소제기를 명한 박형남 부장판사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졸렬한 해꼬지가 뒷따를 것만 같다는 판단에서다. 국정원 사태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가하고 있는 권력의 파렴치한 만행이 연상되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박형남 판사에게 혼외 딸이 있다고 가공해 낼까?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고 허위 날조한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할까 심히 우려스런 대목이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기획하고 조선일보가 소설을 쓰는 사태가 재연될지 지켜 볼 일이다. 참으로 유치하고 졸렬한 박근혜 정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는 스스로의 정당성에 토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집권세력은 더욱 그렇다. 박근혜 정권의 거듭되는 몰염치를 통해 새삼 이를 확인하게 된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정권의 어디까지를 겨누게 될 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국민적 시선이 엄중하다는 점에서 결코 비켜 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 모두가 박근혜 정권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