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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40년을 살았으면 이제 그리 적게 살았다고 할 수 없는 나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사람은 자신이 어떤 가정환경과 성장환경을 거치며 자랐느냐가 그 사람의 정서와 가치관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느낄때가 많았다. 가령 드라마에서 바람피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를 자주 쓰는 어떤 작가의 경우 어린시절 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하는 바람에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알게 모르게 그와같은 내용의 작품을 자주 쓰게 된다는 고백을 한적이 있다.
또 6.25때 좌익활동을 한 직계가족이나 친척으로 인해 ‘연좌제’로 평생동안 고통을 받고 살아온 집안의 경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와 과거 정권에 대한 한을 갖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겐 ‘남북대치의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일’이었느니, ‘그래도 경제를 발전시켜 보리고개를 면케한 대통령’이라느니 이런식의 설득은 아무리 해봐도 소용이 없다.
또한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웬만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가령 예부터 이른 우스개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어떤 부잣집 딸네미한테 ‘가난’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 했더니 ‘우리집은 가난합니다. 운전사 아저씨도 가난하고, 정원사 아저씨도 가난하고, 주치의 아저씨도 가난하고...’ 이런 황당한 글을 남겼더라는. 태어나서부터 금수저 입에 물고 부유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어릴때부터 열악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온 삶을 이해해주길 바라는것. 그야말로 무리인 일이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의 삶일때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의 삶에 대해 굳이 이해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각자 개인의 삶이고, 평생 자신의 세계 이외의 다른 세상의 사람을 만나볼 일이 없는 경우에라면 굳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어릴때부터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에서 자란 모태신앙인인 여성에게 사이비종교에 빠진적이 있는 사람이나 무신론자의 정서나 가치관을 굳이 이해해달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고, 어릴때부터 아주 반듯하고 모범적인 가정에서 자라나 흠결있는 가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이한테도 굳이 이혼,재혼가정에서 자라난 자녀의 상처를 이해해달라 요구하는것. 솔직히 결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일때는 굳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예술인이나 정치인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작가든 음악가든 화가든 결국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이해하며 그곳의 상처를 달래주고 대변해줄 필요가 있는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왕이면 보다 많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취재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 역시 보다 많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지금보다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주는것이 궁극적인 목적일진대, 적어도 정치인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과 현실이 어떠하며 그들이 바라고 갈망하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가 요구되는 직업세계이기도 하다.
이석기 사태로 인해 다시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어버린 이른바 ‘종북논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를 참으로 착잡하게 만든다. 사실 종북의 실체는 그 뿌리를 따져보면 결국 80년대 운동권에 있다. 김일성이 ‘뿔달린 도깨비’라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정작 80년 전두환의 5.18 광주학살이란 참극을 목격하게 되고, 그로인한 정신적 충격에 ‘어쩌면 북한이 우리보다 나은 체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 ‘친북’세력과 주사파가 80년대 대학가 운동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았던것은 어쩔수없이 인정해야하는 우리의 비극적이고 가슴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와같은 ‘종북논란’ 혹은 ‘종북세력’이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후세에 군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이 정당했다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한번은 털고 넘어가야할 숙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종북세력’을 비난하는것과 그 무슨 ‘광의의 종북’ 어쩌구 하며 아무한테나 ‘종북딱지’를 갖다붙이는 행위는 별개의 문제다. 후자의 경우 사실 그런식으로라면 결국 정권을 비판만 해도 ‘빨갱이’로 몰던 군사정권 시절의 무책임한 색깔론과 하나 다를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종북 또는 친북세력이 일정부분 형성되게 된 그 뿌리를 따져보면 그 중요한 하나는 역시 80년 광주의 비극과 그로인해 시작된 80년대 대학가의 분위기. 그리고 두 번째 요인으로 꼽을수 있는것은 ‘과잉된 반공교육의 역 편향 부작용’으로 봐야할 것이다. 6.25 이후에 태어난 1960-70년대생들은 바로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받으며 김일성뿐만 아니라 북한사회 전반을 ‘뿔달린 도깨비’나 ‘무서운 사람들’로 인식하고 자라난 세대다.
하지만 실상 60년대 후반 -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는 북한이 다소 앞서있었다는 점은 지금은 정설로 굳어져 있는 상태다. 박정희 대통령이 ‘북진통일’이 아닌 ‘남북간 체제경쟁’을 하자는 구호를 내세운 70년대부터가 우리가 본격적으로 북한을 앞서기 시작한 시점으로 봐야할것 같은데, 그러나 비록 객관적 수치면에선 북한을 앞서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남한주민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기 시작한 시점은 80년대에나 접어들어서부터의 일로 봐야할 것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해볼까 한다. 사실 인터넷 논객 생활을 하면서 괜한 오해나 시기를 받고 싶지 않아서 숨긴 필자의 과거사(!)가 하나 있는데, 사실 필자는 학창시절을 강남에서 보냈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거의 10년을 강남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특히 필자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학교 선생님들이 자기네집 잘산다고 너무 우쭐대는 아이들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들 전부가 다 너희들처럼만 살면 오죽이나 좋겠니 ? 하지만 다 너희들 같지 않고 니들이 모르는 세상이 더 많은거니까(즉 아직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너무 으스대지 말고 좀 자제하며 살아라’며 종종 주의를 주시기도 하고 탄식을 하시기도 하던 그런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하다.
헌데 필자가 중학교 1학년때인가 2학년때 많은 학교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 하나가 터졌다. 그때가 85-86년이니 여하튼 시국은 여러 가지로 불안해지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고, 헌데 이때 학교에서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동영상 하나를 학교 ‘도덕’시간을 이용 학생들이 시청하도록 한적이 있었다. 내용은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그 생일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는 모습이 주를 이루는 동영상이었고, 한마디로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틀어준 동영상이었던 것이다.
동영상의 주된 내용은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소위 ‘충성의 편지 전달식’ 같은 갖은 김일성 생일 기념,찬양 행사등을 벌이는 내용, 어린아이까지 동원된 매스게임이라던가 군사훈련 혹은 대규모 군중집회, 그 외 북한방송에서 자체적으로 보여주는 ‘평양시내’의 주민들의 생활모습등이었다. 헌데 동영상이 대충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접어들때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주된 내용이 북한방송의 자체 동영상인 평양의 일반주민 생활상이라던가 놀이공원 같은데 나들이 가는 모습 그 외 이른바 ‘평양소년궁전’ 같은 북한에서 특히 어린이,청소년등을 위해 만들어놓은 시설 따위가 보여지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헌데 평양시내의 아파트에 사는 일반주민들의 생활모습이 보여질때부터 교실에서 동영상을 시청하는 아이들 중에 ‘어...좋다...좋다...’하는 탄성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절정은 ‘평양소년궁전’등 평양시내의 어린이,청소년용 시설이 보여질때 일어나고 말았다. “어머낫~~~!!! 너무좋다 !!!” 동영상을 시청하던 아이들이 전부 환호하며 탄성을 치고 박수를 치는등 난리도 아니었고. 당황한 도덕선생님은 바로 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