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를 영입한 일로 말미암아 민주당 안팎이 몹시 시끄러운 모양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연합과 연대에 근본적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던 원조 성추행당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민주당을 성추행당이라고 맹렬히 몰아세우고 있단다. 성추행당에도 1중대와 2중대가 있나 보다. 늙은 양반들이 힘도 좋아….
부산에서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운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와중에,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치러지는 뒤편에서, 성희롱으로 법원에서 유죄선고까지 받은 사람을 떡 하니 데려오는 민주당의 배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과 목숨 걸고 싸울 배짱은 없어도 성폭력 관련사범을 제주도까지 찾아가 삼고초려하는 배짱은 있는 것이 정세균 체제의 민주당이다. 누가 민주당사에다가 뱀이라도 몇 마리 풀어놨으면 좋겠다. 뱀 먹고 성추행 더 열심히 해서 빨리 망하라고.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일은 다른 데 있다. 민주당이 6ㆍ2 지방선거의 승리 방정식을 통째로 허물어뜨리는 엄청난 자충수를 둔 것이다. 한나라당이 중앙권력을 쥐었을 때 제일 잘못한 짓이 무엇일까? IMF 사태를 불러와 나라경제를 결딴낸 것이다. 지방권력을 행사하면서 지은 제일 용서받지 못할 죄는 어떤 것일까? 바로 숭례문, 즉 남대문 태워먹은 거다. 이명박-오세훈으로 이어지는 서울시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문화재 관리행정이 남대문 방화사건의 빌미와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남대문 전소(全燒) 사건의 숨은 주역은 이명박과 오세훈 말고 또 있다. 정동일 중구청장이다. 그가 선거법을 어겨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한나라당이 숭례문 전소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남대문 태워먹은 일이야말로 한나라당이 두고두고 골치를 썩어야 할 치명적 원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마뱀 꼬리 자르는 식으로 정동일 씨를 ‘숙청’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기실 정동일 씨가 저지른 문자메시지 대량발송은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만큼 심각한 불법행위는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집권당 소속이라면. 출마자의 수완과 인맥만 좋다면 선관위의 구두경고에 머무는 가벼운 위법사항으로 대충 뭉개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숭례문 화재로 초래된 한나라당의 정치적 부담을 민주당이 알아서 덜어줬다. 정동일 씨가 민주당에 입당함으로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스코어가 3 : 1에서 2 : 2로 바뀐 탓이다. 기존에는 이명박-오세훈-정동일 대 노무현 정부서 문화재청장으로 임명된 유홍준의 구도였다. 이 일방적 경기가 정동일이 민주당에 들어오면서 이명박-오세훈 대 정동일-유홍준으로 동점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민의 억장을 무너져 내리게 만든 숭례문 전소사건의 책임자 숫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2 : 2로 동수를 이룬 결과다.
성추행? 솔직히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남자인 이상 우리 모두 잠재적 범죄자인지도 모른다. 이당 저당 기웃거리며 당적변경을 일삼는 철새행각? 여야를 넘나들며 선거를 치러온 정동일 씨의 정당쇼핑은 그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 전반이 앓고 있는 구조화된 고질병이다.
허나 수백 년 동안 전란의 참화와 세월의 침식을 이겨내고 우리 옆에서 우뚝하게 서 있던 국보1호 숭례문을 홀라당 태워먹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그리도 강조하는 선진화된 법치사회 같았으면 책임자들에게 종신형을 때려도 전혀 할 말이 없는 중차대한 과오다. 이런 사건의 핵심 관계자를 구청장 자리 하나 더 얻겠다고 데리고 오는 민주당의 소탐대실하는 무신경함은 가히 정신병 수준이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하루 정식으로 날 잡아서 정신감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저 사람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왜 민주당 당권파는 이와 같은 부작용과 후폭풍을 무릅쓰고 정동일 서울 중구청장을 민주당에 입당시킨 것일까? 현재로서는 한 가지 이유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 DY, 곧 정동영 골탕 먹이려는 수작. 정동영과 이름이 비슷한 정동일이 민심의 지탄대상이 됨으로써 정동영에게도 부정적인 연상효과가 미치리라고 계산한 것이 아닐까?
민주당이 경쟁력 있는 외부 인사 영입의 미명 아래 보여주고 있는 황당무계한 자폭시리즈의 연출자가 듣자 하니 김민석 씨라고 한다. 그는 현재 민주당의 최고위원이다. 어엿하게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게다가 최근에는 지방자치 기획단장에도 임명되었다. 그런데 하는 짓은 완전 정세균 씨 수행비서다. 정세균이 결심하면 김민석은 하는 양상이다. 스스로가 당대표를 위한 마당쇠를 자처한 셈이다. 김민쇠로 변신했다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하고.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부분은 그가 한국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보좌관 출신 국회의원은 여럿 존재하였다. 국회의원 출신 보좌관은 김민석 씨가 처음일 듯싶다. 너무 일찍 출세한 까닭에 겸손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인물이 정세균 씨의 보좌관으로 역할하면서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겸양의 미덕을 체득하는 거야말로 민주당의 잇따른 폭탄 떠안기가 남긴 유일한 성과물일 것이다. 오세훈 씨는 만약 서울시장에 재선된다면 정세균 씨와 김민석 씨한테 꼭 크게 한 턱 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