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 입니다. 관공서엔 조기가 걸렸고, 추모의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상처를 되새기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들도 꽤 됩니다. 사실 직간접적으로 미국에 큰 영향을 끼친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행기 탑승시의 불편은 이날 테러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 그러잖아도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미국 이민국의 관리들은 이 사건 이후 더욱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요.
미국의 전반적인 생활 문화가 바뀌게 된 사건이기도 하지만,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도 여전합니다. 사건이 가장 큰 충격의 비주얼로 나타났던 쌍동이 빌딩의 붕괴 때, 그곳에서 일하던 제 친구는 마침 그날 아이가 학교에서 너무 아프다고 데려가라고 했었답니다. 이 친구가 일하던 곳이 가장 고층에 가까웠다는데, 어쨌든 아이 문제 때문에 아이 학교로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간발의 차로 화를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길 전해듣고 그냥 하염없이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고 직후 뉴욕으로의 통화는 완전히 중단되다시피 했었고, 그 통화도 며칠만에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해 이맘때 작고하신 장인께서는 "갑자기 비행기가 아주 낮게 빨리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저게 뭔 일이야' 생각은 했는데, 이게 그런 사고가 될 줄은 몰랐지" 하고 회고하시곤 했습니다. 이것을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의 충돌로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전대미문의 충격을 받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내 친구처럼 직장 동료들을 잃었던 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계속해서 반복되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 장면을 지켜보면서 망연자실해야 했을 많은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미국엔 거대한 변화가 왔습니다.
매카시즘의 선풍 이후 가장 큰 광풍이 미국을 집어삼켰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 하에 저질러지는 인권의 무시와 탄압은 미국을 이전의 미국과는 전혀 다른 사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감시와 사찰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공항에서의 검색 같은 것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안전을 강화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이것이 인권의 유린과 침해의 형태로 종종 나타나고 있는 것도 지금의 미국이 그 전과는 달라진 가장 큰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시초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지나친 팽창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것입니다. 과거 가장 큰 적이었던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 사회는 내적으로 곪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를 비추어 볼 거울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군비 경쟁이라는 악영향 말고도, 그들은 서로 적대하면서도 상대방의 체제의 발전상에 맞춰 서로를 상호 발전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복지가 발전하고 시민들이 살기 좋았던 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련과의 핵전쟁 위협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소수민족들의 약진이 이뤄진 것도 그때였습니다. 방위산업이나 첩보전, 전자산업 등에 인재들이 많이 필요했던 미국은 이때가 되어서야 유색인종들에게 정부관리가 되는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민권운동이 발달했던 것도 이 때입니다.
물론 이때도 인권의 침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이런 면이 더욱 심화됐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비춰 볼 거울이 없이, 객관적인 잣대가 없는 주관적인 판단으로 안보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레이거노믹스 창궐 이후 시작된 극단적인 사회의 양극화는 이러한 미국의 현실에 더욱 깊은 골을 파 놓은 셈이 됐습니다.
그나마 지금의 미국이, 스스로 자생적으로 마련해 놓은 민주주의의 틀이 어느정도 남아 있어서 이정도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실제로 미국도 파시즘으로 경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던 것이 이 9.11 사태라고 할 것입니다.
인권의 무시와 탄압이라는 것이 다시 이 21세기에 들어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어떤 체제가 독주하게 되면 이런 부작용들은 일어나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지금의 체제는 자본주의가 극대화되어 모든 판단의 준거가 '이익의 유무'가 되어버린 셈이고, 우리나라라고 해서 이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 자본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나라가 한번 거덜날 뻔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국가단위의 이윤추구가 더욱 개인의 욕망으로 강력하게 전이되어 버린 듯한 모습을 봅니다. 국가나, 한 사회 단위나, 혹은 그 사회에 속한 개개인들이나, 순수한 욕망은 결국 양극화를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순들이 점점 커다란 단위로 모이고 모여 집적되어 폭발한 것이 이 9.11 이 아니었는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