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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었던 '커피 칸타타' 때문이었을까요? 저녁에 느닷없이 커피가 당겨서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 담고 하는 과정에서 세워 뒀던 트래블러 잔이 넘어지면서 유리로 된 티팟에 넘어져 티팟의 이가 나가 버렸습니다. 바로 제 입에선 "뭐야, 이거, 재수없게..." 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건 그냥 제 부주의로 생긴 일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수퍼스티션을 입히기엔 너무나 명확하게 제 잘못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저녁에 유리로 된 무엇인가를 깨 먹었다는 것이 재수없다는 통념이 너무나 배어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바로 튀어나왔을 겁니다.
사실 여기엔 인류가 살아오면서 축적해 온 삶의 지혜들이 배어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밤에 유리로 된 걸 깨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이걸 혹시 밟기라도 하면 다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재수없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사고를 예방하려는 이유입니다. 이런 삶의 지혜들이 배어 있는 타부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그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 예로, 이슬람권이나 유태교 문화권에서는 돼지를 더러운 음식이니 먹지 말 것을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돼지라는 짐승이 갖는 어떤 문화적 상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 지방에서는 돼지를 도축하게 되면 다른 짐승 고기보다 지방이 더 많아 빠른 속도로 부패하고 그것을 잘못 먹게 되면 탈이 나고, 심지어는 식중독과 이와 연계된 탈수 현상으로 이어지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고온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탈수 현상이란 곧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이런 경고를 보다 극적으로 하기 위해 이런 표현들이 생겼고 살아남았을 겁니다.
서양에서도 사다리 아래를 지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히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의 공구가 떨어진다거나 사다리를 타고 작업하는 사람이 추락해 지나가는 사람을 다칠 수도 있게 하니, 이를 경계하는 것이겠지요. 뭐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의 경구가 얼마나 많이 존재합니까?
다듬이돌을 베고 자면 입이 돌아간다는 건 다듬이돌이 딱딱하고 차갑기 때문에 뇌로 통하는 혈관을 막아 급성 풍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며 문지방 옆에서 귀를 후비면 근심할 일이 생긴다는 것은 갑자기 누가 문을 열면 귀를 후빌 때 쓰는 무엇인가가 고막을 찌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연설 중 대선 후보 경선중에 한 것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자당께서 노 대통령에게 "아서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권력에 대들지 말 것을 호소했다는 구절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웃사이더 출신의 대통령이 됐고, 그러다가 결국 정을 맞은 모난 돌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 정 맞는 모난 돌이 되겠다고, 상식을 제자리로 돌리겠다고 길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손에 든 그 촛불들을 보면서, 결국 그 징크스를 올바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옳은 일이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되새기며 살았던 사람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말을 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실제로 그것 때문에 목에 떨어지는 칼을 받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전제군주 지배 하의 사회였다면, 지금은 민주주의의 시대,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각성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유신의 관성이 남아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에게조차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결국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전진한다고, 그렇게 말해줘야 하고 그걸 보여줘야 할 의무가 민주주의를 믿는 우리 개개인들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