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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하느님과 우리 민족의 어머니 마고, 그리고 백성과 만민을 이롭게 해야 할 리더 빅맨들
한국.배달.고조선 이전으로 기원전 7천년까지 올라 가는 마고족 홍산인들은 마고를 민족의 어머니로 삼고 여신상과 여신전을 만들어 섬기고 제사를 지냈다.
홍산지역에서 발굴된 마고 그녀의 모습은 가부좌상의 자세로 명상수련을 하고 있다. 마고 여신상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명상수련의 목적은 닫하지 않고 유기체적으로 한몸인 우주기운(하느님)과의 합일이였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병이란 것도 몸의 기운이 막혀 있을 때 생기는 법이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의 목적이란 인류만민이 닫지지 않고 하나로 통하여 행복을 느끼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크게 반성하지 않고 고통당하는 피해국민들에게 사죄하지 않은 일본이나 김일성을 우상화 신격화하며 세계와 개방하지 않는 김일성조선은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고자 하는 사춘기 청소년과도 같다. 성인이 되지 않는 국가라는 의미와 같다.
우리 해민족의 어머니라는 마고는 동서 2만리와 남북 5만리를 율려(하나님법으로써 양심에 투철한 자유율법)다스렸던 고대 서남해 마고성의 통치자요, 제사장이였던 것이다. 마고족의 심성은 사라진 마대륙의 고지대에 해당하는 남태평양 지역의 섬들에 사는 원주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고 그녀의 모성이 우리 민족의 경천과 애인 사상이 되었다. 그리고 우주와 한몸이 되어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고 살리는 모성이 바로 우리 해민족의 상제(최고자리의 임금)되는 우주 하나님이다. 홍산지역에서 발견된 원형제단이 바로 마고족이 우주 하느님께 제사를 지냈던 장소이고, 고종황제는 그러한 우리 민족의 시원문화로써 원형제단을 건립하여 천자로서 제사를 지냈던 것이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정치를 펼치고자 하였다.
그것이 또한 마(무)대륙 문화와 정신의 원형으로써 남태평양 지역 섬들의 원주민을 이끄는 추장(빅맨)의 모습이기도 하다. 리더인 빅맨은 공정하게 재판하고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존재다. 일가독재독점이 판치는 비인간적인 전체주의와 황금만능주의 인명경지풍조가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가 문을 닫고 홍익자본주의로 나가야 하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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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과 고토회복의 주역 대한민국은 1만년 뿌리정신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은 안파견 한인임금이 세우신 한국을 기준으로 1만년 역사이래 그 유례가 없는 비상을 시작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페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경제대국이라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 그리고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 강대국을 동시에 달성한 세계적 모범국으로서 세계가 배우고 싶어하는 나라로 부상한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이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500여년간의 소중화 조선이라는 국호를 과감히 버리고 소중화 세력의 반대를 거부하면서 천자 황제국가로서의 <대한>으로 국호를 바꾸며 자주주권국가를 선언한 고종황제의 원대한 이상과 자주독립의 꿈이 담겨있던 대한제국과 만나게 된다.
고종황제가 동의하지 않았고 고종황제의 직인이 찍히지 않았기 때문에 마땅히 국제법상 불법적 국권강탈행위였던 경술국치는 국가의 치욕스러운 사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고종황제는 무능한 군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의 꿈과 이상이 담겼던 13년간의 대한제국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현재 북한은 고종황제가 버린 소중화 국가였던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으나, 우리 대한민국의 국호는 소중화 조선을 버리고, 광대했던 단군의 나라를 다물(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대한>이라는 국호를 사용함과 동시에 우주 하느님 상제님께 제사를 지낸 천자국임을 세계에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다물이였다.
대한제국이 있었기에 강화도 마니산 제천단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냈던 단군왕검(한왕검)이 보여 주었듯이 우리는 고대 인류만민의 제사장민족으로서의 천자국을 회복하고 자주독립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으며, 지금 이렇게 세계 속의 대한민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상 불법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고 수탈과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했던 일본은 대한민국과 피해국가들에 대해 공식적인 사죄와 피배배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면서 군국주의 부활에 나서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원전에서 태평양으로 흘러 보내는 오염수로 인하여 고기들과 인간을 죽이고 있다. 사후 안전처리를 못해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인과응보 천벌이 아니겠는가!
김일성집단의 적화야욕때문에 일어난 남침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인명피해와 이산가족을 낳았고 한반도를 페허로 만들어 버렸다. 사회주의로 포장한 일가 군사독재왕조에 불과한 김일성집단은 60년 동안 가해집단으로서 민족 앞에 남침과 피해에 대해 공식 사죄 한번 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사죄하지 않고 죽었다. 그리고 김정일을 거쳐 손자 김정은이 대를 이어 왕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3대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과응보이고 천벌이 아니겠는가!
침략에 대해 절대 공식사죄나 피해배상하지 않는 일본과 김일성 조선은 그래서 이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코리아를 동아시아 중심국가로 만들었던 코리아 광개토태왕은 고구려를 침략하고 약탈하고 페허로 만들었던 백제나 거란이나 후연의 과거사을 절대 잊지 않았다. 고담덕이 태왕에 즉위했을 때 철저한 응징이 시작되었다. 거란이 끌고간 코리아 백성들을 데리고 왔고, 고구려를 침략하여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살해한 백제를 응징하여 아신왕의 항복도 받아 내었다. 고구려를 침략하여 수도인 국내성을 유린하고 선왕이였던 미천왕의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까지 도굴하고 태후와 황후까지 인질로 끌고가서 고구려에 모욕을 주었던 후연에 대해서는 후연의 시조 모용황을 섬기는 사당이 있는 북경지역을 초토화시키고 후연을 완전히 포위하여 굴복시켰다. 코리아 광개토태왕은 단군한국의 옛영토를 모두 회복하고 코리아를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공존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비젼이 되야 할 코리아 중핵시대다.
김일성조선과 일본침략도발에 맞서 튼튼한 자주국방을 확립하여 침략도발시 우방국들과 군사동맹으로 철저히 응징하는 것을 전제로 대한민국 코리아가 침략전쟁을 일으키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뿌리와 정신을 기반으로 나라혼과 국민성을 바로 세워서 정치경제군사문화적으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자는 것이다. 국사가 필수과목이 되었다. 이 국사필수과목화가 근현대사를 자기 정당정파이기주의로 유리하게 기술되는 수단이 절대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역사바로 세우기란 바로 대한민국의 상고사로써 뿌리와 정신부터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생방송>에서 방영한 <환구단의 비밀>은 대한제국과 대한제국의 탄생을 알린 원구단 천제를 통해 고종황제의 원대한 꿈과 이상이 무엇이었는지, 대한민국의 정신과 미래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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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소개내용]
(1) 제1부 ‘고종황제의 꿈, 大韓(대한)의 위대한 시작’
1) 대한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종소리
19세기 말, 세계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향해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그때, 동아시아의 질서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1894년 발생한 청일전쟁이다. 그리고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일본에 패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동양질서(화이華夷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국제질서가 급격히 재편되는 것을 지켜보던 고종은 마침내 자주독립의 의지를 세우기에 이른다. 그리고 1896년, 고종은 서양의 태양력을 채택하는 공식행사를 연다. 그런데 고종은 왜 자주독립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서양의 역법(曆法)을 채택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에서 역법을 제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공자가 저술한 『서경』「요전」에는 “해, 달, 별의 역상을 살펴 삼가 때를 알린다. (역상일월성신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서 보듯이 동양에서는 백성들에게 역(曆)을 통해 농사의 시기를 알려주는 것이 통치자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였다. 즉, 통치자의 역할은 사시변화와 일월성신의 규칙을 알아내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하늘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행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통치자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늘의 시간인 천시(天時)에 맞게 세상의 시간인 인시(人時)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역법은 오직 황천상제의 천명을 받은 황제만이 제정하여 반포할 수 있었다. 중국은 해마다 책력을 제후국에 반포하였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책력을 하사받은 조선은 국가행사를 함에 있어 중국의 국가행사를 피해서 해야 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책력은 조선과 일출, 일몰 시각이 다르고, 주각과 야각의 각수 차이로 인한 시차의 문제로 인해 중국의 역법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중국의 책력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달력인 향력을 비밀리에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므로 고종이 중국의 책력을 철폐했다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찾고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의지를 표명한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즉, 중국의 제후국(복속국)임을 거부하고 시간의 자주권을 확립한 사건이었다.
아침을 알리는 파루(罷漏)의 종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 고종.
고종이 들은 그 종소리는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계 속에 우뚝 선 자주독립의 종소리는 아니었을까?
본 프로그램은 당시의 시대상황, 국제질서의 재편, 조선과 주변국의 역학관계를 통해 고종의 원대한 꿈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동양에서 역법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동양에서 인식했던 중국 중심의 국가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대한大韓의 시작을 알리는 원구단이 가지는 의미를 조명한다.
동양에서 유일하게 서양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제국주의의 세력으로 급부상한 일본, 일본은 조선과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조선침략을 계획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보호 하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청나라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은 청일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노대국(老大國)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조선과 만주에 진출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삼국간섭을 통해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에서 인정된 일본의 요동반도(遼東半島) 영유(領有)에 반대한다. 이러한 와중에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기에 이른다.
자신들의 거사가 수포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한 일본은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와 낭인들을 시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하기에 이른다.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마침내 1897년 2월, 러시아 공관으로 탈출하는 아관파천을 한다. 그리고 러시아와 외국의 비호 아래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낸다. 이후 대한제국은 독자적인 연호(광무光武)를 사용하고 나아가 국가제도의 정비 및 국사력 확충 등 근대국가 건설을 향해 나아간다.
따라서 본 프로그램에서는 을미사변 후 일본에 의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의 심경을 살펴보고, 고종황제가 원구단을 만들어 대한제국이 천자국임을 세계에 선포하게 된 실제적인 의도와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2) 제2부 ‘天子(천자)의 나라 대한민국’
1) 일제가 원구단을 축소한 근본 이유를 찾아본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있었던 우리나라의 국호이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한일합병)이 조인됨으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된다.
이후 일제는 1913년, 원구단을 강제 철거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조선호텔의 전신인 철도호텔을 세운다.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경내에 남아 있다. 또한 대한제국의 국호를 없애고 고종황제를 독살(1919년 01월 21일)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친왕과 의친왕처럼 왕의 칭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왕의 칭호를 계속 사용하게 한 것인가? 그것은 동양의 종법제도와 관련이 있다. 중국과 일본은 봉건제도가 있었던 나라들이다. 중국에서는 황제 아래 제후가 있어 황제로부터 봉토를 받아 분국을 다스리며 조공을 바쳤으며, 일본에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다이묘(영주)가 있어 봉토를 받아 다스렸다. 바로 이러한 제도에 의거하여 일본은 조선을 일본천황의 제후국으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서양 제국주의의 식민지와는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므로 본 프로그램에서는 일제가 원구단을 축소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보고, 황제와 제후국의 왕은 어떤 관계와 차이가 있었는지 제도, 복식 등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그 첫 번째 국가 대사(大事)로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2) 중국과 조선의 천단 형태를 비교하여 천자문화의 시원을 밝힌다.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고 조선과 일본을 제후국으로 인식했던 중국, 그리고 자신을 천황의 나라로 여기고 조선과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 제국주의.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황제국(천자국)의 위상이었다.
황제와 왕은 그 복식과 제도가 모두 달랐다. 심지어 조선은 왕이 되는 것까지도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황제와 왕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무엇일까? 그것은 황제는 하늘의 주인이신 황천상제의 천명을 받았다는 것이고, 왕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천상제께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자는 오직 황제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중국을 황제국으로 받들고 천제를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 이후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으며 천자국으로써 당당히 그 위상을 떨쳤다. 그리고 중국의 내정간섭과 영향을 자처하던 조선이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무대에 당당히 서고자 했던 그 첫 시도도 또한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등극이었다.
그렇다면 과거 독자적인 천자문화를 발전시켰던 중국과 우리나라, 둘 중 누가 천자문화의 기원일까? 중국의 천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