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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 것이 힘의 배분과 이를 통한 세력간의 균형 잡기라고 할 때, 현대 의회정치는 지금껏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형식적으로는) 비폭력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는 늘 피의 보복이 난무하고, 정치 행위와 관련한 살육 행위는 정치행위의 당사자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가족 친족 모두가 학살되는 식의 정치보복 패턴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만큼 흘려야 하는 피의 양도 컸습니다.
그러나, 이런 데서 자유로워졌다는 데서 현대 정치의 결과에 의해 흘리는 피가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 앞에서 착취당해야 하는 제3국인들의 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피, 전쟁과 분란으로 인해 흘리는 피를 감안한다면 현대 정치는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정치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 그만한 근대성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나치 시대의 역사가 다시 펼쳐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판. 뭐, 다음은 통진당 해체가 요구될 것이고, 시민사회 안의 진보적 세력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민주당 내의 비교적 진보인사들에 대한 잡들이도 계속되겠지요. 그러면서 새누리 일당독재의 기틀을 잡기 위한 공안정국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아참, 해외 간첩단 같은 것도 한두개 만들어서 터뜨릴 것이고...
정치판에서 상식이란 걸 기대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면서, 이제 정말 촛불에 더 기대야 하는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1990년 한국을 떠나온 후에 변화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에 많이 놀라고, 감동도 받고, 더 나아지겠구나 하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치판 속에서 변화에 저항하며 조선시대 노론 벽파마냥 자기 권력을 위해서만 움직이던 무리들은 더욱 공고하게 그들끼리 뭉쳤고, 처음으로 비주류가 정권을 잡았던 10년간 세워 놓은 민주주의의 발판을 다시 짓밟아 부숴 버렸습니다.
이석기가 국가 변란을 모의하고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처벌해야죠. 그러나 그 조악한 증거라는 것들을 가지고 완전히 유죄 확정이 난 사건마냥 저리 떠들면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물타기하고, 이참에 아예 유신 때로 다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저들의 작태....
그리고 그런 저들의 음모에 자기들의 지지기반이 흔들릴까봐 민주주의에서 지켜야 할 대원칙을 나몰라라 하는 야당의 두껍을 쓴 보신주의 정당 민주당을 보면서, 역시 우리나라를 바로잡는 주체는 깨어있는 시민임을 여러번 확인하게 되는, 그런 날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