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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소속된 이석기 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공안 당국의 수사 대상이 돼 몸살을 앓자 한때 한 솥밥을 먹다가 분당한 정의당이 통진당과의 선 긋기에 나섰다.
자칫 하다가 진보당과 비슷한 종북 이미지가 덧 씌워지면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직접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반국민들은 진보당과 정의당의 차이를 잘 모른다.
그냥 막연히 한 솥밥을 먹다가 분당한 한 것으로 보아 두 정당이 엇비슷한 성향의 정당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정의당은 분명 억울한 측면이 있다.
사실 민족해방(NL) 계열이 장악하고 있는 진보당과 달리, 정의당은 민중민주(PD) 계열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NL과 PD는 1980년대부터 갈등을 빚어 왔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의 갈등이 보수진영 갈등보다 더 심각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NL과 PD는 모두 1980년대 반독재 민주변혁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 창당 문제 등을 놓고 양측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PD는 진보정당을 창당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 왔으며, NL은 그런 PD를 향해 줄곧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노회찬ㆍ심상정 등 명문대 출신의 이름 있는 운동권 인사들이 2000년 1월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기반으로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물론 그들은 PD였다.
그러자 NL 세력이 2004년과 2005년에 대거 민노당에 입당했고, 급기야 수와 조직력에서 앞서는 그들이 조금씩 당권을 장악해갔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양측은 갈라서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더 이상 둘이 하나가 될 수 없을 확인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데, 그것이 바로 2006년 10월 발생한 ‘일심회 사건’이다.
일심회 사건이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장민호 등이 각종 국내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보고한 사건으로 당시 최기영 민노당 전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민노당 중앙위원 등 NL계 간부들이 주요 현안에 대한 당 내 계파별 성향과 동향을 분석한 자료를 북한 공작원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PD는 2008년 2월 임시 당대회를 열고 이른바 ‘일심회 제명처분안’을 올렸으나, 당 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당권파에 의해 폐기되고 말았다.
결국 심상정ㆍ노회찬 전 의원 등 PD 측 인사들이 민노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NL과 PD는 그대로 영원히 결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양측은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이라는 깃발 아래 다시 하나가 됐다. 여기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 친노 세력의 일부인 참여민주당도 합세 했다.
진보당은 4.11 총선에서 당시 친노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성사시켰고, 민주당으로부터 ‘통 큰 양보’를 받아내 무려 13석의 의석을 확보, ‘원내 제 3당’으로 자리매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총선직후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이 제기됐으며, 급기야 노회찬 심상정 등 PD 측 인사들과 참여민주당 측 인사들이 NL계인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NL 측은 이같은 요구를 묵살하고 말았다. 그래서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등 PD 측 인사들과 참여민주당 측 인사들이 분당, 정의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진보당과 정의당은 상당한 갈등 양상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2일 정부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전달되자 바로 그 다음 날 진보당은 민주당과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게 구명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정의당 의원들에게는 편지를 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의당은 4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 표결을 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양측이 다시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연대를 통해 진보당을 키워준 민주당에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일부책임이 있듯이, 통합민주당이라는 깃발아래 한솥밥을 먹었던 정의당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살아남으려면, 종북 세력과는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진보 세력과 종북세력이 손잡는 어리석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