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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시는 벗님의 글을 다시 모셔왔습니다. 요즘 문제... 아니 그냥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해 둡시다. 이석기 사건이 진짜 간첩사건으로 봐야 하는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글입니다. 푸핫, 작명 센스 하고는. 레볼루션 오거니제이션? 푸하하.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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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제임스 본드와는 너무도 다른 레알 스파이들의 세상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첩보공작원은 아마도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일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영화 007은 액션 판타지물이지 첩보원들의 세계를다룬 영화는 전혀 아니다.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킨 작가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만 봐도 007 영화는 실제 첩보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007영화의 팬이라면 어느 시리즈에도 나오는 본드의 명대사...해당 편의 악당이 그의 이름을 물으면 ‘Bond...JAMES BOND!’라고 또박 또박 대답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첩보원들 중 임무 중에 자기 본명을 이렇게 쉽게 가르쳐주는 바보는 어디에도 없다! 도대체 주인공이 왜 007이라는 살인면허번호로 불리는지조차 망각하게 만드는 저 어이없는 대사... 실제 첩보공작원은 최소한 가명이 서너 개에서 수십 개에 이르며 그러다 보니 자기 본명도 까먹고 살기가 일쑤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임무에선 007이나 흑금성 혹은 청천강(영화 이중간첩에서 나왔던, 의사로 가장한 북한 공작원의 암호명)과 같은 암호명으로 행세하지 절대로 자기 본명을 쓰진 않는다. 아마도 이들의 머리속에는 최소한 서너 명의 위장용 인생역정이 자동으로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공작원과 007을 비교한 다큐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가장 큰 차이로 지적하기도 했다.
내가 본 007시리즈에서 가장 나를 배꼽 잡게 했던 장면 중 하나는 The Spy who loved me(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영국의 첩보원인 본드가 임무를 성공해 소련을 구하자, 소련 최고의 훈장인 레닌훈장을 받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비현실적이냐면 원작소설에서 첩보원 본드는 훈장을 받을 대상조차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Moonraker 원작 소설에서 본드는 런던을 공격하려던 핵탄두 미사일을 막아내는 엄청난 공헌을 세우고도 조직의 규정에 따라 훈장은커녕, 임무수행 중에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는 이유로 장기해외휴가를 빙자한 추방신세가 된다. 국가를 구한 공로로 특별히 포상을 하려던 총리의 온정어린 제청마저 MI6의 수장 M은 규정을 내세워 간곡히 이를 거절한다. 이런 게 진짜 스파이의 세계다.
나라를 구해도 스파이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설사 기록된다고 해도 진짜 이름이 아니라 암호명만 덩그러니 남을 뿐이다. 2차대전에서 나치 최고위층의 핵심기밀정보를 낱낱이 알려줬던 ‘루시’는 사실 소련군 수백만 병력도 하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연합군 승리의 일등공신이지만, 역사는 그저 그를 ‘루시’로만 적고 있다. 아니 여전히 우리는 루시가 한명인지 여럿인지 그 존재자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모름지기 스파이는 이래야만 한다! 그게 스파이라는 존재의 타고난 숙명이다. 혹여 진짜 이름이 드러나게 되면, 쇼와일본을 발칵 뒤집었던 ‘조르게’처럼 제 명에 못살고 사형대위에서 끝나는 게 스파이의 운명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레이커에서 묘사된 본드의 훈장포상 미수는 2차 세계대전 중 실제 첩보업무를 수행했던 해군 중령출신 플레밍다운 서술이다.
실제로도 공작업무에 성공했다고 해서 첩보공작원이 그 임무로 인해서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훈장이나 포상을 받는 경우는 전혀 없다. 받더라도 다른 걸 빙자해서 주지, 절대로 간첩임을 드러내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자기 본명을 쓰면서도 수십 편째 흥행중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명백히 허구의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플레밍의 007시리즈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물론 아직까지도 여전히 서구의 모든 서점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유 역시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로는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진 원작소설이 아직도 상업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건 그 사실적인 접근방식 때문 일게다.(물론 플레밍의 소설에도 허구적 요소는 다수 가미되어 있긴 하다)
오늘날 많은 선진국의 정보조직들이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는 것도 기실 존재가 드러나면 스파이는 가치가 없다는 이 바닥의 생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국의 대표적 정보기관 MI 5와 6의 수장이 누군지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이스라엘의 모사드, 프랑스의 DSGE, 독일의 BND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의 국정원장이나 미국의 중앙정보 국장처럼 수장이 알려진 경우는 사실 예외적인 것이다. 생각 있는 정부라면 정보 및 첩보공작기관은 수장은 물론 예산조차 위장시켜서 운영한다. 예산 총규모가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규모와 활동 빈도를 파악당할 수 있으므로. 이렇듯 존재자체가 드러나는 걸 꺼리는 정보 및 첩보공작기관의 요원들이 제임스 본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재기발랄하게 권총 까고서 마구잡이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일 수 있을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대다수의 스파이들은 역대 제임스 본드들처럼 사람 눈을 확 끄는 매력적인 용모의 소유자들보다는 그저 평범한 외모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단 주위의 시선을 끄는 스파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은밀함이야말로 모든 스파이들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성이자 마지막까지 준수해야 할 절대가치다. 제 아무리 유능한 스파이라도 정체가 드러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스타크에서 클로킹이 벗겨진 다크 템플러는 스팀 팩 마린의 총질 한방으로 끝장나듯이.
만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남파간첩의 세계를 일면 흥미롭게 조합시켰지만, 그토록 잘 훈련된 인간병기를 고작 달동네 고첩 역할로 짱박아두는 설정으로 리얼리티를 망쳤다. 이 만화가 마지막에 가서 엉성한 구성을 드러냈던 건 필연적으로 그 설정부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북한에 대한 공부와 첩보와 정보기관의 생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온 필연적 귀결이다. 그 작품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웠던 고첩은 바로 우체국 배달원으로 위장한 김일성 대 경제학과 교수였다. 당신이 만약 간첩을 찾고자 한다면 가장 의심이 가지 않을 분야부터 차근차근 뒤져야 한다. 일전에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진짜 간첩은 절대로 우리 사회에서 요즘 핫이슈가 되셨다는 소위 경기동부나 자칭 보수우익들이 맨 날 간첩이라고 지목하는 소위 주사파들처럼 대놓고 정권타도나 체제부정 그리고 집권당에 대한 공공연한 반항을 일삼지 않는다. 아니 거기까지 침투하려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과 힘을 투자했는데, 뭐하려고 시선을 끌어서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는 바보짓을 한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고정간첩이 많이 활동하고 있을 분야로 나는 택시운전기사를 꼽고 싶다. 물론 이 현상은 우리사회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보편된 일이니, 혹여 택시기사님들을 이상하게 볼일은 절대로 아니다. 택시기사야말로 누구보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과 동향 그리고 민심을 가장 밀착해서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