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했고, 특이하게 지리와 세계사를 선택했었습니다. 남들이 다 했던 사회보다는 그쪽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한국 사회에서 살지 못하고 미국에 와서 살고 있군요.
우리 때도 입시제도는 정말 많이 변했더랬습니다. 저는 논술고사를 본격적으로 치른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 우리 사촌형들은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고 대학에 진학했었습니다. 어쨌든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때에도 강조는 됐었습니다만, 대학을 굳이 가지 않아도 살 길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대학생이 얼마나 됐는가 생각해보면 우리 때 외쳤던 구호가 말해줍니다. "백만학도 단결하여~ " 뭐 이런 구호들이 시위 현장에서 많이 외쳐지곤 했으니까요. 지금 한국에 대학생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때처럼 백만으로 퉁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닐 겁니다. 잠시 통계를 찾아보니 거의 4백만이 되는 숫자군요.
대학은 공부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이 가서 더 큰 학문을 탐구하는 장이 되어야 하고, 그 때문에 지성의 해방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갖고 학문을 더 넓고 깊게 연구하는 장이어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대학은 모두가 알고 있듯, 그냥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의 단계 중 하나가 되어 버린 듯 합니다.
듣자하니 그동안 논란이 됐던 한국사를 필수적으로 시험을 치도록 했다는 것은 일견 이명박 시대보다는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저는 어쩐지 이게 뉴라이트 교과서의 배포 준비가 다 끝났다는, 저들의 비뚤어진 자신감의 표출은 아닌가 싶어 조금은 걱정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교육이 지금처럼 주입식, 걸러내기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입 제도가 지금처럼 점수 높은 아이들 골라내기 식이라면, 그렇게 "꼭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수억번 날려도 절대로 고쳐질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길러 보니, 이곳 교육도 문제가 많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가진 작은 재주들을 모두 썩히게 만들어 놓지는 않습니다. 유럽이나 캐나다만큼은 못해도, 미국의 교육 수준 정도라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펼치고 싶은 꿈을 펼치도록 해 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의 교육제도에서 정말 국가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이 함께 어우러진 '동량'이 길러질 수 있을까요? 교육제도가 지금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경쟁의 체에 걸러지고 걸러진 이들만이 국가의 가장 중추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들어가거나 재벌 기업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처럼 '개천에서 용날 수 있는' 사회도 아닙니다. 이미 한국은 신분제가 굳어진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능력은 있지만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무차별로 양산되는 그런 사회인 거죠.
제일 끔찍한 건 이런 겁니다. 잘났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입법활동을 펼칠 수 있을까요? 저런 수험제도 아래서 다 뚫고 판검사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힘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보통의 국민들을 위해 법질서를 운용하러 들까요?
사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이런 불평등한 사회를 유지시키고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도구임과 동시에 사교육이 독버섯처럼 자라게 만드는 온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변화는 결국 입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존립 여부를 고민해야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을 겁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