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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추천사를 비판함
강준만교수께서 책을 소개하는 글을 한겨레 신문에 올렸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더러운 철학>(개마고원)을 추천하는 추천사이다. 추천사이기에 좋은 의도로 쓰여진 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추천사가 오히려 원래 책을 흠집내기 하고 있지 않나하는 의심이 든다. 원래 책의 내용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추천사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책의 원 내용은 별개로 하고, 추천사만 놓고 이야기 해 보자.
///.....보수가 보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찰하거나 진보가 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찰하는 일은 드물다. 보수·진보의 구분을 떠나 어느 쪽에서건 ‘상식’이나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명제에 대해 의심해볼 것을 요구하는 일도 드물다. 김진석은 늘 그런 드문 일을 끈질기게 해내는 저자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인간이든, 아니면 진영이든 간에 스스로의 내적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경지에 올랐음을 입증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석님의 그러한 시도는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다.
///.....예컨대 경쟁을 긍정하면 보수, 경쟁을 부정하면 진보다. “경쟁을 하되 어떤 경쟁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다시 묻는 지식인은 드물다.
선명한 이분법을 지양하고 양쪽의 장단점을 저울질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은 더러운 일이다. 그런 고민 자체가 더럽고, 이른바 ‘진영 의식’에서 탈퇴해야 하는 일도 더럽다.....
.....내 나름의 분석에 따르면(진보논객들의 논조는) 경쟁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넘어서 저주 일변도다. 물론 아름답긴 하다. 그런데 영 불편하다. 그들 역시 경쟁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닌가. 국가와 민족을 타도해야 할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만, 오늘날 한국이 이만큼이라도 발전한 것도 역시 경쟁의 덕을 본 게 아닌가.///
인용한 글에서 강 교수는 '경쟁을 긍정하면 보수, 경쟁을 부정하면 진보다'라는 규정을 예시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글에서도 상기한 기준에 의거해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러한 구별 기준은 강 교수가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한국의 대표적 진보 논객들을 각자 나름대로 뽑아서 분석해 보자라면서, '내 나름의 분석에 따르면(진보논객들의 논조는) 경쟁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넘어서 저주 일변도다.'라고 단언을 하고 있는데, 정말 과연 그럴까?
강 교수께서 이 글을 쓸 때 어떤 상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도대체 한국의 어느 진보 논객이 경쟁에 대해 저주를 했는지 더듬어 생각해 보았다. 나의 기억으로는 전혀 그렇게 무지막지한 논객의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단정에서는 마치 진보 논객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냄새가 난다. 강 교수는 진보 논객으로 유명했었는데, 진보를 떠나 보수로 옷을 갈아입기로 작정을 했는가? 2MB의 교묘한 손길이 그 동안 작용을 한 것은 아닐까?
그의 글은 저자에 대한 호의에도 불구하고 극단을 넘어서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글을 전반적으로 분석해 보면 상당한 논리적인 모순을 계속해서 밤하고 있다. '경쟁을 긍정하면 보수, 경쟁을 부정하면 진보다'는 규정은 논리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규정이다. 왜냐하면 진보에도 수많은 스팩트럼이 존재하고 보수에도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경우의 수를 하나의 범주로 규정해 버리고자 하니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조차 명백하게 그 선을 구분하기 힘든 마당에, 그 규정을 경쟁에 대입시켜 이분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뿐더러, '진보 논객들의 글이 경쟁에 대한 저주 일변도'라고 하는 데 이르러서는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
도대체 강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 그런 글을 읽었을까? 나는 진보논객들이 쓴 경쟁에 대한 저주 일변도의 글을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단지 불공정 경쟁을 비판하는 진보 논객들의 글들은 수없이 읽어 보았다.
강 교수의 이러한 글쓰기는 참으로 위험하다. 위 글을 읽은 독자는 모두 다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경쟁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경쟁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다'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논객들은 경쟁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하자고 주장할 따름이다. 경쟁은 사회가 있는 한 어쩔 수 없으나, 그 경쟁을 일정한 법칙에 따라 할 것을 주장한다. 동물 사회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식 경쟁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패자를 보호하는 경쟁, 패자 부활이 가능한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복지사회로 나아가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경쟁의 법칙을 정하자는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하청기업을 착취하는 것이 경쟁의 법칙에 맞는 일인가? 한편에서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 일류대학 졸업장을 돈으로 만드는 데, 또 한편에서는 사교육비는커녕 점심조차 굶어야 하는 현실이 공정한가?
자기의 경쟁력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부모의 가난 때문에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열악한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비정규직을 강요당해야 하는 사회 현실은 공정한가?
이처럼 우리 사회의 경쟁은 국가가 자유경쟁이란 미명하에 국민들을 방치하면 할수록 불공정 경쟁의 늪 속으로 그만큼 더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만약에 국가가 '자유경쟁은 지고지순한 생존의 법칙이다'라고 선언해 버린다면, 정자들 간에도 자유경쟁을 시켜 부유한 집에서 때어날 정자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 정자를 결정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출생을 결정할 아무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부자집에 태어나고 싶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원죄 때문에 일생의 가난이 결정되어 버린다면, 어찌 그 사회를 인간사회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 그 사회야말로 생지옥인 것이다. 사회적 지위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 그것이 이명박 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정책들이 만들어 낼 사회인 것이다.
2MB를 비롯한 모든 자수성가한 보수 부유층들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가진 것 아무 것도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 나 죽을 고생을 하고 이 자리에 우뚝 섰다. 너희도 나처럼 성공하면 될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옛날에는 모두가 가난했다. 사교육 자체가 없었다. 모두 같은 조건하에서 공부를 했다. 따라서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가 있었다. 요즘도 과연 그러한가?
내일신문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 일반계 고교의 정시 서울대 합격자 중에 강남, 서초구 출신이 31.1%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외국어고, 과학고를 포함시키면 강남, 서초구 학생들의 서울대 진학률은 훨씬 더 올라간다. 강남, 서초구의 학생들의 지능지수가 특별히 높아서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단지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일류대학에 진학할 수가 있고, 또 그 이유로 일류대학 졸업장을 여유 있게 움켜 쥔 후, 모두가 부러워하는 정규직에 취업을 보장받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2MB는 "취업자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똑 같은 돈을 내고, 똑 같은 4년 동안, 거의 똑 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단지 출신 대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원죄 때문에 어떤 놈은 정규직으로 가고, 또 어떤 놈은 생지옥과도 같은 비정규직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2MB,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는가? 당신이라면 부모를 골라서 태어 날 재주가 있는가? 아무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