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의 루디 아저씨가 무궁화를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벌들을 보며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노란 꽃가루를 완전히 뒤집어 쓴 벌들이 여기저기 날고 있는 모습은 꽤 보기 좋은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전에 이 꽃이 우리나라의 국화라고 말해 주자 깜짝 놀라기도 했던 루디는 여기에 워싱턴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허밍버드(벌새)들을 위해 벌새들이 주둥이를 찔러 넣으면 설탕물을 빨아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그 아래 접시엔 벌들이 꼬이도록 설탕물을 담아 그릇에 담아 놓았습니다. 벌들이 설탕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납작한 접시에 벌들이 꼬였다가 사라지면 담겼던 설탕물들도 사라집니다.
루디 아저씨가 벌들에 특별히 더 신경을 쓰는 이유는 요즘 벌들이 자꾸 죽어가고, 사라진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하긴 2년 전엔 이곳도 벌들이 너무 심각할 정도로 사라져, 워싱턴주의 가장 큰 산업인 농업에도 큰 피해가 온 적이 있습니다. 특히 체리, 사과 등 벌들의 수분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작목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벌이 사라지면, 인간에겐 대재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부분들이고,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중견 보험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루디는 이 부분을 특히 신경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루디의 회사의 적지않은 고객이 농업 종사자들이었고, 이중엔 '벌 보험' 도 있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벌 개체수의 감소로 인해 작황이 나빠질 경우 이것을 보상해주는 보험이었는데, 나중에 벌이 너무나 급작스레 개체수가 감소되면서 그 회사에서는 벌 보험 상품을 없앴다고까지 합니다.
최근 태평양을 건너 배달된 시사인에서는 도심 양봉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관련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64) 한국에서도 파리처럼 도심 양봉가들이 생긴다는 것이죠. 도시엔 의외로 화단이 많은데다, 평균 기온이 시골지역보다 높고, 살충제 사용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벌들이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방금 이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벌들이 사라지는 큰 이유는 살충제의 남용과 지구온난화 등의 기후변화 상황이 있지만, 미국에선 조금 더 특이한 상황이 있습니다. 벌들의 먹이가 되는 꽃가루의 원천, 즉 '꽃' 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꽃들이 병이 걸리거나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먹기 위해서, 혹은 에탄올을 제조하기 위해서 대량으로 재배하는 옥수수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벌들이 화분을 모을 수 있는 들꽃들이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살충제의 남용까지 겹치면서 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것이죠. 문제는 벌의 개체수 감소는 식량난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자연계의 왕인 양 굴어도 결국은 바로 이런 가장 작은 부분에서부터 우리의 발밑을 파고 있다는 것이죠.
벌들이 윙윙 날아다니는 무궁화를 넌지시 바라보며 "벌통이나 칠까?"라고 말하며 웃음짓는 루디 아저씨의 얼굴이 무슨 도인이나 성자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벌은 꿀을 얻기 위해 기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보호해야 하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면서, 도대체 우리는 이기심 빼곤 무엇이 남는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이런 식으로 벌이 사라진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아마 식량의 엄청난 감소, 그것은 다시 기근과 전쟁으로 이어지겠지요. 이 작은 별에 일어나는 일들이 참 암담합니다.
시애틀에서...
*Time 지에서 최근 내 놓은 벌과 관련된 자료 영상도 있습니다. 한번 클릭해보시길 바랍니다.
http://www.time.com/time/video/player/0,32068,2591408791001_0,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