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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져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하나는 괜찮은 일인 듯 합니다. 1990년 이민 왔을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곳에서 나오는 한국 신문의 미주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고, 결국 그 말은 내가 모르는 '필터' 를 지나 나온 기사들이 한국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는 것이니.
지금도 물론 그 '필터'는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필터의 두께는 과거와는 상대적으로 봤을 때 많이 엷어진 셈이지요. 물론 그 존재는 분명하지만, 그 필터를 통과해 전해지는 시간이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상대적으로 짧아졌기에 과거에 가져야 했던 답답함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자질인 듯 합니다. 최근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청문회장에서 새누리당 측 위원인 조명철, 이장우, 김태흠 등의 발언을 들어보면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누린다는 것들의 수준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청문회장에서 물타기를 위한 지역감정 조장은 물론, 자기들의 수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더러운 인신공격, 어떻게든 예봉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발뺌과 무조건 발목잡기 식의 증인 공격. 함께 인터넷을 통해 이 장면을 들여다 본 아내가 그들을 보면서 하는 이야기가 딱 맞습니다. "무식한 것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의 비극은 바로 저런 것들을 선량이라고 뽑아 놓고도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서 비롯된 것이죠. 그 타성이 1948년의 정부 수립으로부터, 그리고 그 이전의 해방전후사 속에서 청산되지 않은 일제 부역 잔재들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때, 그 잘못 끼웠던 첫 단추의 영향이 이렇게 오래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저 권은희 수사과장 같은, 양심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이만큼 돌아가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뿌리가 이만큼 깊고 우리의 생활 안에 이렇게 깊이 박혀버린 몰상식함, 그리고 그것을 운명인 양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은희 과장의 증언은 마치 죽비의 울림처럼 맑게 날아와 우리의 타성을 깨우는 양심의 소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