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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어 좋은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와인이라고 아무거나 오래 묵힌게 좋다고 믿는 건 오해도 큰 오해인 셈이죠. 예를 들어 와인의 경우는 태닌이 두텁고 산도가 높은 것, 처음엔 솔직히 마시기 힘든 것들이 오래 버틸 수 있는 포텐셜도 큰 셈입니다.
굳이 품종을 따졌을 때, 카버네 소비뇽이 가장 장기보관의 포텐셜이 높은데, 그 이유는 카버네 소비뇽은 '산도가 높으면서도 태닌도 강한' 품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태리에서 나오는 지존의 와인 '바롤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네비올로 품종 역시 장기 보관의 포텐셜이 높은 품종이지요.
이렇게 장기 보관이 가능한 와인들은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위대한 와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보관해야 하고, 적당한 온도, 적당한 습기 등의 조건이 갖춰져야 하지요. 그렇지만, 잘만 보관되면 이런 와인들은 위대한 와인이 됩니다. 비싼 값을 치러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훌륭한 와인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보통 시중에 나오는 와인들은 출시된지 1-2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고, 좀 특별한 와인들도 10년을 넘겨 보관해 마시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발효 음식들도 묵은지니 장이니 하면서 오래 묵힌 것들이 있긴 하지만, 과연 그 수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게다가 시대가 이렇게 바뀌면서, 오래 묵으면 완전히 고물 취급 받는 것들이 더 많게 된 세상입니다. 컴퓨터나 전화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겠지요. 요즘 시대에 같은 전화기를 1-2년 이상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같은 컴퓨터를 5년 이상 쓰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또 변화 자체가 미덕인 것들도 있기 마련인 것이죠.
김기춘... 그리고 7인회라는 이름.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면서 내내 뒤늦게 내려받은 이이제이를 들으며 뛰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악명을 떨치거나, 그 악역을 도맡아 했던 인물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야 할 인물들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더 큰 악명을 떨치는 것이 지금의 상황.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세월을 다시 3공의 시대, 5공의 시대로 돌리려는 저들의 노력은 어느정도 통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촛불에 대해 완전히 입 닫고 있는 지상파 방송들, 그리고 아무리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양, 심지어는 떳떳하기까지 한 저들은 상식의 기준에 맞춰 볼 때 이미 스포일리지가 되어 버린 싸구려 와인을 프리미엄으로 속여 파는 악덕 상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상품은 이미 몇십년 전에 스포일리지로 판명났고, 심지어 1987년 6월에는 그 와인을 만들어 내던 자들이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지 않겠다고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라도 한 거였습니다. 아주 위대한 와인은 아니었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만들어 낸 것은 처음으로 밸런스가 어느 정도 잡히고 장기 보관하고 숙성하면 괜찮을 정도의 와인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때 만들어 낸 와인은 모두 길가에 햇볕 드는 곳에 내다놓고 오래전 스포일리지로 판명된 시어 꼬부라져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게 마땅한 유신와인, 독재와인을 꺼내어 진열장에 꺼내어 놓고 있는 꼴입니다. 아시겠지만, 그렇게 하면 와인샵 망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