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란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등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것들 가운데서 공통된 성질이나 요소들을 통해 드러나는 객관적 원리나 합리적 법칙들을 탐구해 낼 수 있는 인식능력을 말한다. 이성을 통해 인간은 선악을 분별하며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수많은 현상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직관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인간이 원초적인 본능과 충동적인 감정 및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성에 의해 통제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1차적으로 동물인 인간을 그러나 동물과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성이 지닌 절대적인 힘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고픈 충동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성의 옷을 벗고 본능에 충실하고 싶어질 때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순간일 지도 모른다. 거추장스런 이성의 껍질을 탈피하는 순간 인간은 동물 본연의 원시적 폭력성과 야만성에 기인한 충동적 본능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제 하마터면 이성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충동적 본능의 자물쇠를 스스로 풀어버릴 뻔 했다. 바로 이 두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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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국민을 이리 기만하고 모욕줄 수 있단 말인가. 16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이들을 비호하기 위해 사활이 걸었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그보다 더한 극한 감정을 역류토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 목불인견의 추태를 보여주고 있는 후안무치한 자들
헌법과 법률을 짓밟은 자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헌법과 법률에 주어져 있는 기본권·방어권에 따라 증인선거를 거부한 것은 이들의 오만방자함과 후안무치함을 보여주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법은 지키는 것이 아닌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들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망각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충분히 예상된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아무일 없는 듯 당당하고,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어이없는 광경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청문회를 통해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은 셈이었다. 마땅히 해야할 일과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참으로 목불인견이 따로 없는 자들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치욕스럽고 분하기 이를 데 없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사실이 더없는 자괴감만 안겨 줄 뿐이다.
■ 국정조사는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일 뿐
그러나 원세훈과 김용판의 뻔뻔함과 당당함은 사실 이를 뒤에서 비호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맹목적 지원이 없다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증인에 대해 뻔뻔하다느니 이런 모욕적인 언사는 국민 한 분 한 분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야당의 지적이) 모욕적이지 않느냐? 국정원 대선 개입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보느냐"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필자는 이번 국정조사가 여야의 정치적 입장과 진영논리로 인해 그 실효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으며, 특히 새누리당의 비상식적 행태에서 비롯된 거듭된 국조파행에서 보듯 새누리당의 목적은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의 진상을 밝히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을 적극적으로 비호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에 있다는 것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대북 심리전단의 정상활동을 선거활동으로 호도해 이슈화하면서 대선 승리를 꾀하려다 현명한 국민 판단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이번 국정조사가 삼권분립이 천명돼 있는 헌법에 합치하느냐?"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
국정조사기간의 절반 가량을 무의미하게 소진시키고서야 진행된, 실질적인 국정조사의 첫날이었던 지난 7월 24일 법무부에 대한 기관보고에서 새누리당의 속셈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들은 국정조사의 필요성과 정당성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있었다. 필자가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새누리당이야말로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또 다른 공범들이다. 국정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국정조사를 하고 있는 웃지 못할 이 상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마치 피의자와 공모해 범죄를 저지른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를 변호하고 있는 것과 하나 다를바 없는 풍경이다. 이것이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까닭이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 원-판 청문회, 촛불민심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될 것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촛불민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각계각층의 시국성명이 잇따르고 있고, 최근에는 무려 100년 만에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단이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촛불집회와 잇따른 시국선언들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자행한 반민주적 국기문란행위에 대한 규탄이면서 동시에 수사를 축소·은폐했던 경찰 , 국정원 및 경찰 모두와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또한 이번 사태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자각하고 가장 먼저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강력한 대정부 선언의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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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선거가 국정원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보편적 상식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실체를 알고 싶어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국민의 알 권리이자 정당한 요구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자행한 당사자들은 안하무인이 따로없는 행동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이를 규명해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은 범죄자들을 비호하기에 온 힘을 쏟고 있으며, 대통령은 오불관언 식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애써 참으며 누르고 있던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합리적 이성의 빗장을 저들이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보편적 상식을 지닌 대다수 국민들의 합리적 이성이 무너지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저들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국정조사특위에서 맹활약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모습에서 국민들의 합리적 이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모함과 도발을 읽는다. 국민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의 원·판 청문회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의 앞날을 예고해 주는 것만 같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엉망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이제는 국민들이 심판관이 되어 국정원 사태에 대한 판결을 내릴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