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국가기록원은 자신들에게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없다"라고 밝혔다. 참여정부에서 이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대선정국이 한창이던 작년 10월 말 경 논란이 일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초폐기 공방'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당시의 '사초폐기 공방'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 그리고 국가기록원까지 가세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은 매우 유사한 접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은 역사입니다'라며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의 모든 기록을 남기려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새누리당과 국정원, 그리고 국가기록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려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야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사건의 접점은 과연 무엇일까?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 23일자 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의 대통령기록물 인계 문제를 논의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민감한 사안의 문건을 그 내용과 함께 목록까지 없애버릴 것을 지시했다'고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이 보도는 사실과 완전히 다른 날조에 다름 아니었다. 왜 그런지 이를 먼저 살펴보겠다.
대통령기록물법에 의하면 재임 중 만들어진 대통령 기록은 ▲공개기록 ▲비밀기록 ▲지정기록으로 분류된다. 이 중 지정기록은 비밀기록보다 한 단계 높은 비공개 기록에 해당된다. 이날 회의는 공개기록들 가운데 만약 비밀기록과 지정기록으로 분류된 내용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논의 결과 공개기록을 국가기록원에 인계할 때 공개기록과 지정기록이 연계되어 있을 경우 지정기록은 목록까지도 빼서 공개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지정기록은 공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날 회의는 공개기록에 관련된 비밀기록이나 지정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지의 여부를 관련 비서관 회의를 통해 논의한 것이고 이에 대한 결과가 위에서 밝힌 내용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날 회의의 취지와 목적, 그 과정은 생략한 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밀사항을 그 내용과 목록까지 없애버릴 것을 지시했다'고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은 곧 새누리당의 정치공세의 자료로 이용되었다. '5000년 역사 최초의 역사 폐기 대통령', '사초파괴 대통령', '현대판 분서갱유사건' 등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수사를 동원하며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의대로 국가기밀을 폐기한 것처럼 이미지를 조작했다. 당시 새누리당의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후보도 사실관계는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선일보의 보도를 대선국면에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이와 같은 수순은 그 이후의 이명박 정부와 현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죽이기'에 사활을 걸었던 수구보수세력이 즐겨쓰던 일종의 공식과도 같은 패턴이었다. 수구보수언론이 쓴 소설을 토대로 새누리당이 온갖 수사를 동원한 정치공세로 분위기를 조성하면 박근혜 후보가 등장해서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관련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등의 지극히 원론적인 표현으로 숟가락을 얹고, 이를 다시 수구보수언론과 방송이 확대 재생산하는 수법이야말로 그동안 새누리당이 늘 즐겨 써오던 국면전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대통령기록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대통령기록물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든 사람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기록자체를 폐기하든, 어떻게 처리하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 재임 중의 기록에 대한 존폐여부에 대한 권한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없는 법령까지 만들어가며 결과적으로 수구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정치공세에 시달릴 빌미를 스스로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대통령 재임 중 활동기록의 보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보전에 대한 집념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5년동안의 재임기간 중 남긴 자료만 825만건에 달한다. 그 이전 55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이 불과 105만여건에 불과하다는 것과 비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보전에 대한 집념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데 이를 수구언론과 새누리당, 그리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정치적으로 악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NLL 논란을 촉발시키며 다시한번 참여정부의 기록보전에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
|
'기록은 곧 역사'임을 강조하며 없던 법 규정까지 만들어가며 '대통령기록물'의 보전을 위한 의지를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의는 수구보수언론과 새누리당 그리고 최근에 이 거악적 움직임에 국정원과 국가기록원까지 동참하며 갈기갈기 찢어져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국정원에 의한 불법대선개입, NLL 논란 및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그리고 국가기록원에 있어야 할 회의록 증발 사건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일들을 어떻게 이해 해야만 하는걸까? 대다수 국민들의 보편적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거듭 되풀이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마냥 개탄스럽기만 하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검색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조차 하지 않은 채 서둘러 '회의록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국가기록원, NLL 논란에 대한 전문 공개로 오히려 사면초가에 빠지자 대변인 명의의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실상 NLL을 포기했다"라고 단정지어버린 국정원의 행동은 닮아도 너무 닮아있다. 두 집단이 보여주고 있는 행위의 유사성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또 서두에 언급했던 '사초폐기 공방'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의 접점은 무엇일까? 있어야 할 회의록이 없어야만 하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제안을 NLL 포기로 둔갑시켜야 할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
'지난 대선 국가기관인 국정원은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 수혜를 입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두 문장이면 국정원과 새누리당, 경찰과 새누리당, 국가기록원과 새누리당이 자행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모습들이 모두 설명이 된다. 더 이상 다른 말이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 옛날 백제 무왕은 선화공주를 얻기위해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널리 부르게 했다. 저잣거리의 아이들이 읊어대는 한낱 노래 몇 구절이 가능치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을 이루게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저 두 문장, 대다수의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동의하는 저 두 문장이 결국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단검이 될 것이다. 아무리 숨겨도 숨겨도 언젠가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변치않는 진리가 아니던가!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