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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보캅은 디트로이트 시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1편이 로보캅을 만든 옴니 코퍼레이션의 마피아적인 지저분함을 다루고 있다면, 2편은 좀더 현실적입니다. 디트로이트 시가 파산을 하고, 시정 자체를 장악하려는 옴니 코퍼레이션의 음모는 '누크(핵폭탄이란 뜻이죠. 얼마나 강하길래.)'라는 마약을 팔며 어둠의 권력을 누리다가 로보캅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마약 조직의 두목 '케인'을 '로보캅 2'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시정부는 결국 파산하고, 옴니 코퍼레이션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와중에서 시장이 마약조직의 잔당들의 딜을 받게 됩니다. 마약 조직은 '누크'를 계속 파는 것을 허용해주는 대신 시의 부채를 변제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죠. 그러나 이 딜은 그 현장에 자기를 배신한 조직원들을 다 쓸어버리는, 로보캅 2가 되어버린 케인의 학살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 학살의 배경이 됐던 '디트로이트의 파산'이 현실이 됐습니다. 갚아야 할 채권이 170억달러 이상. 도시 하나의 부채 규모가 어지간한 작은 나라의 총예산 규모에 맞먹었던 셈입니다. 당장 로보캅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사기업이 바로 도시의 경영권을 인수해 버리는 사태야 없겠지만, 이 파산 보호 신청을 통해 얻어낸 기간 동안 별 뾰죽한 수 없이 넘어간다면, 로보캅 영화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치안부재 상태가 되는 것도 가능한 일이 되는 거지요.
문제는 이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없는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디트로이트 시의 지방공채를 산 사람들이나 법인들은 돈을 잃는 것- 물론 작은 돈은 아니겠습니다만- 에 불과하지만, 시정부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나 셸터 서비스에 의존해서 살았던 사람들에겐 생존권의 문제가 됩니다. 시정부 공무원들도 봉급을 못 받게 되고, 경찰들이 사라진 도시엔 범죄가 더욱 흉흉해질 겁니다. 물론 지금도 미국 제 1의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는 도시긴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디트로이트가 이 지경에 빠진 이유에 대해 인구의 감소(1950년대엔 2백만이었던 도시 인구가 지금은 70만명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로 인한 세수의 감소가 직접적인 이유라고 봅니다. 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자동차 공장들이 생산시설을 임금이 저렴한 남부 앨라배마 등으로 옮기면서 인구의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가 이 상황까지 온 것은 결국은 레이거노믹스 탓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동차 공장들이 앨라배마 등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엔 레이건이 대기업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생산시설 이전을 쉽게 해 주고, 또 대기업들이 생산이 아닌 금융-더 정확히 말하자면 크레딧 카드 산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 준 조치 등은 이들 기업으로 하여금 자동차 산업이 아닌 이자놀이에 더 열을 올리도록 했고, 이른바 '유연성 확보 조치'는 해고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해 줬습니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미국 자동차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를 망가뜨린 가장 큰 주범 중의 하나가 된 것이지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견인차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이 딴 짓을 하는 동안, 일본과 우리나라 등이 계속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추격하고 판매고를 늘려갔습니다. 당연히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고가 떨어지고, 디트로이트의 존재감도 그렇게 작아져 갔겠지요. 이렇게 해서 과거 시간당 70달러까지 받을 수 있었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생산 라인의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망가져갔습니다. 래퍼 에미넴이 주연했던 '8마일'은 이런 디트로이트 주민들의 망가지고 몰락한 삶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시의 채권자 중에는 이웃 도시나 다른 대도시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도 전전긍긍하는 지자자체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잘못될 경우, 연쇄반응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디트로이트 시가 경찰을 운영하지 못하게 될 경우, 영화에서는 '옴니 코퍼레이션'이 로보캅을 대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아마 미시건 주가 치안유지를 위해 경찰 대신 주 방위군을 동원할 가능성도 크지요. 미국에서 지역 사회 단위에서나마 '계엄'이 선포될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당연히 주민의 권리는 더 줄어들게 되겠지요. 경제적인 어려움이 개개인의 생활을 다른 방향에서도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디트로이트를 보면서 적자에 시달리는 인천이나, 혹은 그렇게 될 뻔 했던 서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디트로이트는 이런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고 토목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엄청난 토목 공사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공실률은 더 큰 범죄율까지 불러 왔고, 쓸데없는 토목공사들은 건설업자들의 배만을 불려줬을 뿐입니다. 마치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결국 거대 자본들만을 배불리기 위한 정책은 서민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그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디트로이트는 참 처절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