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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세계 13위경제대국,북한 38배국력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수출액 년 3000억달러를 넘어선 세계 7위의 무역 대국이자 국민총생산액 1조달러에 달하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다. 비록 땅덩이는 손바닥만 하지만 강소대국인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을 자랑하는 정보통신강국,세계 일류의 핸드폰,반도체 등 전자산업, 세계 5위의자동차 공업, 최첨단 고부가치 선박건조능력을 보유한 조선대국, 이외에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건설, 석유화학,섬유,제철산업이 대한민국의 경제력을 상징한다.
북한과의 국력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북한경제가 2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하였다고 하지만 2012년 1인당 국민 총소득은 137만 1000원으로 남한의 2558만 9천원의 19분의 1에 불과하다.
국민총소득(명목GNI)의 경우도 북한은 300억 달러에도 못 미치는 33조 5000억원 정도로 남한의 38분 1수준규모다. 인구도 2442만 7천명으로 남한의 5000만 4천명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비록 경제성장을 했다하나 남북간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지금에 비해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남북간 격차 비율이 비슷했던 2000년대 중반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세계적 강소국 지도자로 5년동안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 가난한 시골농가에서 태어나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형설지공 끝에 당시 40여명을 선발하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그것도 독학으로 서울대를 비롯 내로라하는 명문법대 출신들과 겨루어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명석한 두뇌와 자기발전을 위한 치열한 노력과 집념의 인간승리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시합격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판사로 임용된후 대전지법에서 짧은 법관생활을 끝으로 현직을 떠났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노사관련 사건 변호를 계기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스카우트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계에 입문한지 얼마 안되어 열린 5공청문회에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떨친게 계기가 되어 초선이면서 중진급 정치지도로 정치적 위상을 수직 상승시키며 철옹성 같은 대중성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정치인생은 김영삼의 3당야합에 반기를 들면서 재야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하였지만 1997년 대선을 맞아 정치적 노선을 달리했던 김대중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적으로 부활하였다.
김대중정권 집권후 종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2년후 총선에서 재선이 보장된 종로 지역구를 내놓고 지역주의 타파의 명분을 내세워 민주당 후보로 부산 출마를 결단, 낙선하면서 ‘바보노무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와같이 전국적 정치영웅으로 자리매김하는 전화위복의 결과를 가져오면서 묻지마식 지지로 유명한 자생적 지지모임인 ‘노사모’가 결성되고 차기 대선주로 급부상하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전국적 대중성과 부산 경남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노무현을 후계자로 점찍고 행정자치부 장관을 원했던 노무현에게 부산, 경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부산, 경남지역 지지도 제고와 국정경험을 동시에 쌓도록 하였다.
노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언론사 세무조사가 추진되자 이인제,한화갑 등 당시 경쟁주자들이 침묵 또는 완곡한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을때 소관 업무가 아님에도 총대를 메고 나섰다.보수신문의 보도행태를 강력 비판하고 세무조사의 정당성을 주장함으로써 호남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에게 확고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침내 당내 경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노무현 후보 만들기 프로젝트의 결정적 이벤트인 광주경선 1위를 거쳐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 대권을 잡아 김대중 정권의 정권 재창출 주인공이 되었다.
정권 재창출 불발로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으나 국정은 이명박 정권을 능가한 노무현정권 노 전 대통령은 집권후 권위주의 타파, 참여정치,지역주의 청산,사람사는 세상을 통치철학으로 하여 국정을 폈다. 권위주의 타파와 참여정치 부분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그러나 한나라당 등 보수층으로 부터는 친노코드정치,연이은 측근비리에 발목이 잡히는 등 아마추어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범민주진영으로 부터는 환란극복, 남북관계개선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김대중 정부를 정치공학적 도덕적 차별화를 통한 정권의 존재감을 조기 구축하려는 목적하에 골육상쟁식 대북송금특검,동교동 및 김대중 정부 인사 표적사정, 민주당 분당으로 강력한 반발을 샀다.
나아가 김영삼 안기부 도감청사건 김대중 국정원 도감청 둔갑수사로 배은망덕 배신정치라는 비판을 불렀다. 결국 제3기 민주정권 창출에 실패하고 퇴임 후 밀약을 깬 이명박에 의한 박연차게이트 뒤통수 치기에 자진서거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와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보면 호불호를 떠나 명석한 두뇌,정치적 집념,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공학을 겸비한 정치인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친노패권에 집착한 분열적 정치공학적 정치로 정권재창출이 아닌 정권봉헌으로 정치적 실패를 자초하였으나 아마추어 국정 운운은 맞지 않다고 본다.이명박 정권과 비교할 수 없었던 노무현 정부 집권기간에는 아마추어 국정이라는 비판이 틀린건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면서 747공약으로 국민을 사기쳐 당선된 후 반민주 역주행 삽질정치로 최악의 경제성장률, 4대강 국토환경생명파괴, 민주민생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면 3~4%의 경제성장 지속, 자주외교, 군사주권 추구,남북관계 지속 추진한 노무현 정권의 국정수행이 훨씬 성공적이었다.
김정일 양철때기 훈장탐나 NLL상납 했다는식의 추악한 정략적 보수궤변은 인류최고의 망언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미국에 대해 할말을 하는 등 자주외교와 전시작전권 환수 등 군사주권,자주 국방력 강화에 관심을 기울인 점에 대해서는 당시 국방장관, 합참의장으로 재임한 현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김관진 국방장관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이 10.4평양정상회담 당시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박근혜정권과 새누리당, 보수참칭 극우 광신집단의 추악한 정략적 정치공세는 국민공노할 야만적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오로지 극우 패권을 위해 외교적 관례와 국익을 내팽개친 정상간 대화록 불법공개, 선거정치 공작 악용은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헌정을 유린한 국기문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상식적으로 접근해 보더라도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북한보다 2배가 많은 인구를 가진 세계 7위 무역,세계13위의 경제대국에 북한에 비해 19배의 1인당 국민소득, 38배의 국민총소득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미국의 푸들, 딸랑이 노릇이나 한 배알없는 이명박과 달리 초강대국 미국에 대해서도 할말을 했던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인민영웅칭호와 함께 크기만 소붕알만큼 컷지 양철때기로 조악하게 만든 훈장하나 받으려고 NLL을 상납했겠는가.
전후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팔아넘긴 이적행위,간첩질을 했다는 극우집단의 정략적 궤변은 인류 역사 이래 최고의 천부당만부당한 망언이 아닐 수 없다. 회의록 어디에도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이 전혀없다. 대화록 전문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보다 한수 높은 박식함과 합리적 근거에 바탕한 논리적이고 예의를 갖춘 설득력이 돋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공동선언으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군사안보전략적 최전선인 금강산과 개성을 인민군 1개 사단과 여단 등 부대를 이동시켜 남북평화의 전진기지로 이끌어냈다면 노 전 대통령은 10.4정상선언으로 역시 북 해군전력의 본산인 해주를 제 2 개성공단으로 개발하는 민족공생번영의 합의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