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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전 민주당 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 파문과 김현, 진선미 의원 국정조사 배제 논란 등에서 보듯 현 지도부가 무기력하게 여당의 주장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친노무현계가 김한길 민주당을 대표를 압박하는 양상이다.
친노가 다시 전면에 서면서 김한길 지도부는 강경파에 휘둘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친노의 '좌장'격인 이해찬 전 대표도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당신>운운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며 친노진영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대통령이란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당신을 운운했다고 했을 때는 대선불복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한동안 '정중동' 행보를 보여온 당 대표 출신 정세균 고문도 16일 "장외투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 고문은 지난 대선 당시 선거 막바지에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으며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했었다.
그는 당 지도부를 겨냥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고, 김현 진선미 의원의 국조특위 배제 논란에 대해서는 "어불성설"이라고 받아 쳤다. 사실상 현 정국에 대한 당 지도부의 대응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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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NLL(북방한계선) 정국' 속에서 민주당 내 세력간 역학구도가 출렁이고 있다.
지난해 대선 패배 등을 거치며 변방으로 밀려났던 친노(친노무현)파가 다시 전면에 재등장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지난 5·4 전당대회를 통해 김한길 대표로 상징되는 비주류로의 전면적 세력교체가 이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한번 당내 지형 재편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친노진영이 현 정국 대응 방식을 놓고 김한길 지도부와 노선 갈등을 빚으며, 당내 균열이 본격화하고 있어 주도권 경쟁이 본격 점화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친노 진영은 국정원 정국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문재인 의원을 구심점으로 '친문'(친문재인)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보이면서 대여 강경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집행부의 무능한 리더쉽이 친노세력의 결집을 만들고 있다.
대선불복의 속내을 강하게 내세운 문재인과 이해찬, 그리고 대선승복을 인정한 김한길 집행부가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집행부의 입장과 대립하면서 대선불복을 강하게 내세우는 친노파는 명확히 해당행위자들이 아닐 수 없다. 해당 행위자들은 마땅히 당헌에 따라 당원자격을 박탈하고 출당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해당행위로 민주당의 명예와 지지율을 추락시키는 당사자들은 마땅히 당원자격을 박탈하고 출당조치를 취해야 정당의 기강이 서기 때문이다. 김한길 민주당집행부가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결국 민주당은 골수 친노파들이 당권을 장악되고 김한길 세력은 찬밥신세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국정원 대선불법개입 의혹사건에 대해서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구속 기소되어 사법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현재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하여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고 국정조사에 성실하게 임하면 지지율이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NLL문제 역시 국가기밀인 대화록 열람에 반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장을 들어 볼 수 있는 영상자료 공개를 요구하여 당시 김장수.김관진 등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명확히 NLL포기였음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죄하고 NLL사수의지를 표명함과 동시에 NLL이 대한민국의 영해선이고 NLL를 포기하고 부정하는 대통령은 탄핵할 수 있음을 법제화하자는 제안을 새누리당에게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민주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을 따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고 결국 권력욕에 환장한 친노세력의 기만 살려주는 상황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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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당내 최대 세력으로서 단단한 결속력을 과시하는 친노주류에 비해 응집력이 약한 비주류의 '태생적 한계'가 이번에 노출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비주류 일각에서는 친노주류가 최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데 대해 "지도부 흔들기", "주도권 재탈환을 위한 수순밟기"라며 경계감도 드러내고 있다.
대여 전선의 파고를 넘으려면 극단적 적전분열은 피해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로 인해 당장 계파 간 정면충돌이 가시화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10월 재·보선의 성적표에 따라 당내 주도권 쟁탈전이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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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만 고달프게 만드는 권력욕에 환장한 어리석은 정치꾼들아! 정신들 차려라!
민심을 상실한 정치와 정치세력에게는 권력이란 없다. 오로지 천심인 민심에 복종해라! 자유를 누리고 투표권을 갖고 마음껏 경제.문화활동을 누리고 복지의 혜택을 받는 자유민주주의는 천심이기 때문에 민족은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사에서 통합왕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천.지.인 합일의 이치에 따라 열도가 가라 앉고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중국의 소수 민족들의 독립열기로 높아지면 통일된 대한민국은 자연스럽게 조선족이 살고 있는 만주를 취하여 인구가 늘고 경제와 문화는 더욱 번영하니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써의 인류중심국가 되고 마는 것은 마땅한 이치다.
고로 절차와 합의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과 정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은 합심하여 어려운 2천만 북한 동포들과 조선족에게 크게 베풀어 민심을 얻는데 힘써야 한다.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통일과 통합은 민심을 합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봉우 권태훈, "민족 대운이 찾아 왔다...민족은 통일되고 중국은 분열할 것이다."
<<봉우(권태훈)는 정치적으로 많은 고난을 치른 듯하다. 그의 일기를 보면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터진 이후까지도 좌·우익 양측으로부터 투옥당하는 등 적지 않은 박해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 심경은 그의 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60세 때에 연정원을 신축하여 수련을 하면서 공주에 칩거생활을 하였다. 65세 때에 상경하여 한의원을 개업하였으나 사회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3세가 되는 1982년에 대종교의 최고지위인 총전교에 취임하게 된다. 2년 후인 1984년에 '단(丹)'이란 책을 통해서 선인(仙人)으로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단의 열풍을 일으킨 봉우는 1986년에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설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89년에 수필집 『백두산족에게 고함』『천부경(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출판하였고, 93세 때에는 『민족비전 정신수련법』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95세 때인 1994년 5월 공주 반포면 상신리(上莘里)에서 운명하였다.
이상과 같이 그의 생애를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연대기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이제 그가 주체로서 실천한 행적을 토대로 생애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는 선도인(仙道人), 종교인, 사상가, 민족운동가, 한의사 등 여러 모습을 지녔으나 역시 가장 대표적이고 모든 행적과 사상의 근원이 되는 것은 선도수련이었으므로 선인(仙人)으로서의 모습이 가장 강했다고 판단된다.
봉우는 6세 때부터 조식법(調息法)을 익혔으며, 이후 계속해서 정진하였다. 13세 때 당시 선도계의 거인인 김일송 선인과 인연을 맺은 이후 선도수련을 본격적으로 행하였다. 그후 삼비팔주(三飛八走) 등 선도수련가들과 교유를 하였으며, 일찍부터 도반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수련행위를 하였다. 그리고 말년에는 단을 비롯한 서적을 발간하여 선도를 본격적으로 대중화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재래의 선도수행법을 소개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체계화하였다.
그는 예언가로서의 풍모도 보이고 있다. 특히 원자탄의 발명과 일본의 멸망을 예언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도 1951년에 예언하였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미래에 관련해서는 남북의 통일과 중국의 분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발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간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갖고자 하였으며, 유불선(儒佛仙) 등 다양한 사상과 종교의 연구에도 깊이 천착하여 일정한 견해를 수립하기도 하였다. 자연히 민족과 국가는 인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명하여 인류의 문명에 비판하며 미래를 전망한 문명비평가로서의 모습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한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하여 일정한 견해를 수립하였으며, 천부경(天符經)을 비롯한 각종 경전을 해석하고 한민족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전망했다는 점이다.>>/윤명철 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