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적절하지는 않았다. 제1야당의 원내 대변인이라면 현 시국상황을 고려해 발언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홍인표 전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치 NLL 논란을 재점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박영선 의원이 꺼내든 문제의 발언으로 이후 정국이 어떻게 요동쳤는지를 생각해보면 홍 전 대변인의 '귀태 발언'은 그 시기와 내용에 있어 매우 부적절했다.
결국 이 발언으로 그는 원내 대변인의 직책에서 물러나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또 다시 국정원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를 물타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어제 양당의 원내대표가 파행을 겪었던 국회 일정을 정상화하기로 합의를 이루었지만 그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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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전 대변인의 '귀태 발언'을 둘러싸고 양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은 대한민국 정치 수준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귀태'가 '구태'로 보여지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 '귀태'와 '구태'가 정치판에서 만났을 때
새누리당은 시간을 벌었다. '귀태 발언'으로 민주당을 향해 맹폭을 휘두르던 적어도 지난 이틀 동안의 물리적 시간을 번 셈이다. 또한 수세에 몰려있던 국면을 일시적이나마 전환시킬 수 있는 호기를 잡게 되었다. 애초 이 발언이 나온 후 한참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약속이나 한것처럼 전방위 맹공을 펼친 속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정원 게이트>로 정권의 정통성 시비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선무효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게는 홍 전 대변인의 '귀태발언'은 가뭄끝에 단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회 일정을 잠정 중단해가면서까지 총공세를 펼쳤던 새누리당의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의 저급함에 비한다면 '귀태 발언'은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과거에 어떤 발언들로 국가원수를 모욕하고 능멸했었는지는 본인들 스스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필자는 물론 혹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 저급함을 다시 들추어 내지 못함을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한다. 자신들이 직면한 정치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쟁점화시키는 이 낡은 정치야 말로 '귀태 발언'의 본질에 가깝다 할 것이다.
(양비론을 지극히 경계하는 필자이지만) 민주당 역시 '구태'소리를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중차대한 현 시국상황을 감안한다면 <국정원 게이트>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모든 당력과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소임이 민주당에게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일게 만든다.
<국정원 게이트>를 규탄하고, 위협받는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거리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에 앞장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태도는 국민요구를 전혀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전략과 전술이 없는 지도부는 무기력하고 소속 의원들에게는 사태 해결의 진정성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국정원 게이트>는 그 사안으로 보나, 이후에 진행된 내용으로 보다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국기문란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작금의 민주당에게는 화려한 말의 성찬은 있을지언정 당연히 뒤따라야 할 행동이 없다. 그저 여론의 눈치만 보며 제 한 몸 사리기 바쁜 정치인들만 눈에 띌 뿐이다. 민주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국민의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뒤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치루어진 두번의 선거도 바로 이 때문에 졌다.
정치에 있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정치인, 혹은 정치집단의 진심이며, 진정성이다. 거대한 파도는 진정성이라는 바람을 타고 빠르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들끓는 민심을 규합하고 나아가야 할 민주당의 진정성있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민주당에게는 정당치 못한 권력의 폭주를 용납치 않겠다는 단호함도,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그 어떤 절박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국민의 뜻 헤아리고 각성해야
어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범국민 촛불집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1일과 8일에 이어 세번째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시민 2만여명이 참여했다. 시간이 갈수록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부당한 권력에 의해 위협받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위기감이 그만큼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의지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참여 민주주의이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처럼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고 선도해야 할 대한민국의 정치는 아직까지 '구태'속에 함몰돼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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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소모적인 정쟁으로 <국정원 게이트>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할 경우 국민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모두 국민들의 뜻과 요구를 정확히 헤아려야만 한다. '구태정치'에 매몰되어 국민의 뜻을 거스르다가는 제삿상에 올라있는 '황태' 꼴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양당 공히 국민들의 인내심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는 더 큰 화를 자초할 뿐이니...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