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졌던 경기죠. 게임하는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판정 나오기 전에."
경기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이 빗발쳤고, '부끄러운 금메달'이라며 언론은 한동안 이 문제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는 사람을 피해 다녔고, 몇 번이나 자살을 꿈꾸었다. 단 한번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인해 전도유망했던 한 젊은이의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되찾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그는 회고한다. "차리리 그 때 심판이 손을 안 들어줬으면, 더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현재 후배들에게 복싱을 가르치고 있는 그, 아픔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지금 그 아픔을 극복하고 제2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 불법과 부정에 승복하라는 사람들
국정원에 의해 자행된 불법대선개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자신이 진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스스로도 인정한 박시헌 선수와는 다르게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의 불법개입 속에 치루어졌다는 것이 백일 하에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불법과 부정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먼 산 보듯 들끓은 민심를 애써 외면하면서, 오로지 정권유지를 위해 해서는 안되는 짓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 이정현 공보수석은 어제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거센 공세를 펴는 것과 관련해 "승복도 정치권에서 하나의 수양이고 리더의 자질"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국정운영의 중심에 있는 청와대 중요인사의 인식수준이 겨우 이 정도다. 아마도 이정현 수석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아니면 모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의 발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며 불법과 부정 속에 선거가 치루어졌는데 이를 승복하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선거는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는 최고의 수단이자 도구다. 다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1987년 민주화 항쟁, 그 피와 땀의 결과로 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민의를 담아내는 수단이자 도구인 대통령선거가 국가기관과 집권여당이 공모 속에 대단히 불공정한 상태에서 치루어졌다. 공정하고 공평하게 치루어져야 할 선거가 반칙과 불법으로 얼룩져 버렸다. 이정현 수석의 발언은 민주당에게,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같은 불법과 부정을 용인하고 수긍하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정현 수석의 말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 박시헌 선수에게는 있고, 저들에게는 없는 것
서두에 언급했던 박시헌 선수와 저들의 차이점은 단 하나다. 박시헌 선수는 양심의 목소리를 거부할 수 없는 가슴이 있었고, 저들에게는 그 양심의 소리를 찍어 누를 가슴이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공정하지 못한 판정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다른 이들은 불법과 부정을 통해 얻은 승리를 기뻐하며 이를 즐기고 있다.
같은 가슴을 지녔는데 이들의 삶은 극과 극을 달린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예기치 않은 시련을 극복하며 다른
저들이 오판하고 있는 것은 <국정원 게이트>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 본질이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바로 그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유지시키는 시원과 같은 의미이다. 다른 것은 용인해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훼손이라는 것을 저들은 모르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국가와 국민보다 정권유지와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더 상위의 개념으로 설정한 탓에 정작 중요한 시대흐름과 국민의식을 직시하지 못한 까닭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중심에 있던 이한열의 후배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21세기 대구경북대학생연합과 건국대학교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모두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있는 대학들이다. 젊은 지성들이자, 시대를 이끌어가는 집단지성들인 대학생들이 연이은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명료하다.
"원세훈과 김용판을 (공직 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 수사하고 책임자와 관계자를 엄벌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게이트'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라"
현재까지 전국의 13개 대학 총학생회와 20여 대학의 교수들, 200여 시민단체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국민들의 요구에 반하는 언행들을 거듭하면 할수록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불법과 부정에 승복하고 부당한 권력에 머리를 조아릴만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이를 지탱하는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허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지 말고, 국민의 요구에 이제 그만 승복하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수양이고 리더의 자질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