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식당이 있었다. 무려 9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식당은 맛은 물론이고 친절한 서비스와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는 주인들의 장인정신까지 더해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도 변치않는 맛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주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엄선한 '좋은 재료'와 음식을 준비하는 '정직한 마음과 정성', 소비자를 생각하는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선대 때부터 이어오는 '운영 원칙', 이 네 가지면 충분했다고. 나머지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공이었다고.
|
그렇게 이 식당은 나날이 번창해갔다. 그런데 몇 대를 이어가며 가업으로 운영해오던 이 식당의 주인이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이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달라지고 말았다. 새로 부임한 주인은 이 전 주인과는 다른 마인드로 식당을 운영해 나갔다.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질 낮은 식재료를 사용했고, 더 많은 음식을 더 빨리 내놓기 위한 갖은 편법들이 동원되었다. 바뀐 주인은 정직하지 않았으며, 음식에 만드는 데에 정성을 쏟지도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운영 원칙'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이로 인해 심심치 않게 손님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식당에 대한 안좋은 소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한 때 9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식당은 급기야 찾는 이가 뜸한 한적한 식당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적자를 감당키 어려워진 식당 주인은 급기야 몇 십년째 유지되던 '합리적인 가격'을 인상하려는 계획까지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가뜩이나 손님없는 식당에 가격인상까지 이어진다면 손님들이 더욱 더 이 식당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을 식당 주인은 모르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식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 KBS의 TV수신료 인상계획 납득할 국민이 어디에 있을까?
KBS가 이사회에 TV수신료를 현행 25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상정했다. 필자가 서두에서 언급한 식당의 경우처럼 KBS 역시 만성적자로 인한 경영난을 근거로 가격인상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해야 하는 경우는 물론 있다. 식당의 경우, 물가상승으로 인한 식재료비의 인상, 인건비 상승, 건물 임대비 인상 등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격인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경우는, 가격이 오르더라도 기존의 맛과 서비스 품질이 그대로 유지되고, 오히려 가격인상을 고려해 식당이 기존의 서비스 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만약 가격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맛은 고사하고 서비스가 별반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나빠진다면 손님이 이 식당을 찾을 이유는 없게 된다.
KBS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TV 수신료는 30년 넘게 동결된 상태이고 62억원의 적자와 디지털 전환 비용으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츨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수신료 인상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KBS의 주장을 액면 그래도 받아들인다면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시청료 인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 조건이 붙는다. KBS가 과연 방송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공정성과 공익성, 독립성을 갖추고 양질의 정보를 시청자에게 제공해주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만약 KBS가 이 전제 조건에 부합하는 방송을 시청자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면 (물론 일부의 반발은 있겠지만) 시청자가 TV 수신료 인상을 지금처럼 거부할 명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KBS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 국민들은 KBS의 편파방송을 지적하며 문제삼고 있다
민주당의 최민희 의원이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해서 지난 8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휴대전화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1.9%가 KBS의 TV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RDD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5.0%)
TV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로는 응답자의 42.9%가 '국민부담 가중'을, 31.5%가 '불공정 편파방송' 때문이라고 답했다. TV 수신료 인상반대의 이유로 '국민부담'을 제외하면 '불공정 편파 방송'이 그 다음으로 높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시청자들은 그만큼 'KBS의 방송내용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시쳇말로 '시청료가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격 인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식당이 맛과 서비스에 대한 기본적인 소비자의 만족도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송의 경우도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공익적 사실에 기반을 둔 양질의 정보들이 시청자에게 제공되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KBS는 이 점에 있어 전혀 시청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대선 KBS는 MBC와 더불어 최악의 대선불공정 방송 경쟁을 벌였다. 필자가 이전에 포스팅한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KBS는 박근혜 당시 후보 위주로 방송을 교묘하게 편집해 편파적으로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KBS언론노조는 이같은 편파 편집방송을 비판하며 KBS가 어떻게 대선에서 편파방송을 내보냈는지 그 사례들을 자세히 나열하기도 했다.
▶ KBS 뉴스 편파 사례 모음 ☜ (클릭)
▶ KBS 대선 보도, 뉴스제작·편집 모두 불공정 ☜ (클릭)
위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조사대상 10명 중의 8명이 넘는 사람들이 KBS의 방송내용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이후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및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MBC와 KBS 양대 방송사는 방송의 불공정성 부분에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쌍벽을 이루고 있다.
|
■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는 해야할 일을 먼저 하라
KBS의 TV 수신료 인상,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TV 수신료 인상은 주지한 바와 같이 방송이 정치권력으로 독립해서 공공성과 공익성을 갖추고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방송을 제공하는 방송환경을 먼저 구비한 이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맛은 물론이고 서비스도 형편없는 식당이 경영난을 이유로 무턱대고 가격을 인상한다면, 이는 결국 망하는 지금길에 다름 아니다. 방송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방송의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권력의 편에 서서 편파적인 방송으로 일관하고 있는 KBS의 기습적인 TV 수신료 인상 시도는 절대로 국민들을 이해시킬 수 없으며, 결국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맛에 대한 소비자의 입이 정확한 것과 마찬가지로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눈 역시 정확하기 때문이다. KBS는 TV 수신료 인상에 앞서 먼저 해야할 일을 선행하기 바란다. 그것이 TV 수신료 인상을 위한 전제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