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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처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는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당론 채택을 추진하고 있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비판이다.
당초 민주당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와 당 지도부는 정당공천제 폐지가 바람직하다쪽으로 뜻을 모은 바 있다.
하지만 8일 열린 의총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박지원 의원은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역 토호가 기초의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엄청난 부패를 야기할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피력했고, 특히 정청래 의원은 "민주당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정치개혁 과제로 삼는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의 덫에 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승희 의원은 여성 공천 의무할당제 위축 등을 이유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했다.
이에 따라 소속 의원의 총의가 모아지면 당론 채택 절차를 밟겠다는 김한길 대표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실 민주당의 결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 성급했다.
공천폐지 결정을 하려면, 최소한 당의 주인인 당원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고 밀도 있게 진행했어야 옳았다.
공천폐지 결정은 정당책임정치의 본질이 훼손당할 수는 있는 만큼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말았다.
물론 공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성 시비와 부패문제 등으로 인해 현행 공천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로 인해 공천제도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는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행여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속담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문제라면, 엄격한 경선 관리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공천을 폐지했을 경우, 정당이 작동시켜 온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 절차와 장치를 철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폐해가 더 심각해 질 수도 있다.
공천폐지 결정은 여성과 장애인은 물론 정치신인들의 지방선거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자금과 조직 면에서 우세한 지방토호세력들이 득세하거나 현역 정치인이 기득권을 활용해 온존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새부적인 대안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는 마당에 ‘폐지’ 결정을 내린 것은 다분히 포퓰리즘으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 불신에 기댄 정당무용론 내지는 정당해체론"이라고 지적했다.
또 진보신당의 한 기초의원은“민주당이라는 간판으로는 지방선거에서 생환할 가능성이 없어지자 갑자기 정당공천제 폐지에 열을 내면서 선거 때 민주당의 이름을 쓰지 않으면서 기호도 추첨하게 하여 유권자들의 혼란을 활용할 꼼수를 생각해 낸 것”이라며 “너희 당이 부끄러우면 차라리 해산하라. 나에게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내 당의 공천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최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치쇄신 입장발표와 관련, 양당을 동시에 비판하고 나선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대선 당시 가장 먼저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공약했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최근 그 공약이 잘못됐었음을 시인한바 있으며, 그의 싱크탱크격인 ‘내일’ 최상집 이사장 역시 공천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결국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민주당 지도부만 공천폐지에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민주당이 공천폐지를 잠정 결정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는 판단이다.
지금이라도 민주당 지도부는 이 문제에 대해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당원들의 뜻을 물어야 한다. 당의 주인은 당 지도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당원들이기 때문이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