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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일보 사태에 대해 저도 그것이 '파업'인 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당한 직장폐쇄 사태이지, 파업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주 한국일보에서 나름 꽤 오래 일한 저로서도 본국 한국일보에 대해서 갖는 감정은 각별할 수 밖에 없었기에, 최근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다룬 한국일보 사태에 대한 특집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춘추필법, 불편부당을 사시로 하는 한국일보가 이리 망가졌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부도덕한 리더가 문제더군요. 한국일보의 장재국 회장의 경영권 장악을 위한 집념이 만든 파행이라고는 하지만, 참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저는 몇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도를 표방했던 한국일보가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하는 것. 일단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한국일보 현 경영진, 그것도 장재국 회장의 경영권 장악 의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 깊은 내면에는 '비판적 중도'를 내건 한국일보가 겪었어야 할 경영적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불편부당. 실제로 지키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힘든 스탠스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안이 일어났을 때, 자기의 분명한 입장을 내 보이지 않으며 팩트만을 기본으로 해서 이것을 보도하고 분석하는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이며,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김으로서 독자를 존중하는 것은 분명히 훌륭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영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조중동이 아직도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의 편파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이것을 반증합니다. 힘있는 쪽에 붙어 버림으로서 힘을 가진 자들과 권력을 나누고, 그것을 통해 '광고'라고 하는 언론사의 근본적 생존 수단을 장악하는 것은 '지금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기존 언론사의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렸다는 게 문제인 것이죠.
즉, 민주화가 더욱 명확하게 사회에 자리잡고, 대중의 민도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한국일보같은 스탠스의 회사가 더욱 그 존재가치가 도드라지지만, 지금 보수를 가장한 극우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한국일보같은 회사가 생존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지금의 '권력관계'가 내재하고 있는 가장 큰 모순중 하나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는 언론사라는 것이 과거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없는 미디어의 상황이라는 또 하나의 조건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개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현대 미디어의 환경은 자기의 '스탠스'를 명확하게 하고,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는 언론사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든다는 것이죠.
'내 편, 네 편'이 너무나 명확하게 갈려 버리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기사 이상의 정보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스마트한' 독자들에게 신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역할, 즉 '소식을 전한다'는 것 이상의 분명하고 확실한 '의견'과 '편가름'을 접하기 힘든 지면들이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도 지금의 세태를 말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고, 상식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었을 때, 지금의 한국일보 같은 신문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신문이 될 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이 단지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주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기사를 쓰고 그것을 '저널리즘'의 입장에서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언론매체는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지금 MBC나 KBS, 혹은 YTN 등의 영상매체들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중립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 우리 개개인의 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각자가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 속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이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삶의 모든 부분들에서 정치가 이뤄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우리의 생활로 가져가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상식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될 때에 언론도 상식적이 될 수 밖에 없고, 한국일보같은 중립을 추구하는 매체들이 더욱 돋보이게 될 것입니다.
미디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신미디어로 발달하면서 기존의 종이신문이 설 자리는 당연히 더 좁아들 것입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정신'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일보의 투쟁,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언론들의 투쟁과 그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공정언론 실천의 요구들은 바로 이 저널리즘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척도인 동시에 시민정신의 귀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 들어 우리를 다시 덮치고 있는 이 반동의 역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록 그 댓가는 크지만 우리는 지금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상식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