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시기, 항우에게 투항한 위나라 왕은 유방을 공격한다. 초나라와 위나라의 협공을 받은 한나라는 위기에 처하고, 이에 유방은 대장군 한신을 보내 위왕에 맞서게 한다. 위왕 역시 이 소식을 듣고 백직을 대장으로 삼아 황하의 동쪽 포판에 진을 치고 한나라에 맞섰다.
형세를 살핀 대장군 한신은 포판의 지형상 공략이 쉽지 않음을 간파하고, 사병들로 하여금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을 하게 하고 밤에는 강공을 할 것처럼 적을 속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군대의 대부분을 뒤로 돌려 다른 곳(하양)에서 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만들어진 뗏목으로 황하를 건넌 대장군 한신은 신속하게 군사를 진군시켜 위나라의 후방 본거지인 안읍을 점령하고 위왕을 사로잡는다.
■ 성동격서의 고사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 새누리당
널리 알려진 <성동격서>란 고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동쪽을 칠 듯이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라는 의미의 고사성어인 <성동격서>는 이렇듯 상대방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교묘하게 돌리는 전술을 취하고, 실제로는 다른 곳에서 실리를 얻는 상황을 일컫을 때 즐겨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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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누리당이 펼치고 있는 전략은 바로 <성동격서>의 고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치개입이며 선거개입인 <국정원 게이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국기문란사건이었다. 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사건수사진행을 통해 밝혀진 바이며, 필자 역시 그 동안 몇 편의 글을 통해서 새누리당과 국정원, 경찰,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국정원 게이트>의 검은 커넥션을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 <국정원 게이트>, 말이 필요없는 있을 수 없는 범죄행위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 ▶국정원은 야당후보를 비난하는 글들을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게재하며 국민여론을 조작해 나갔다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이를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꾸민 정치공작으로 매도하며 역공을 펼쳤다 ▶새누리당은 이 과정에서 이를 수사하던 경찰에 압력을 행사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허위기자회견을 하도록 했다 ▶경찰은 사건을 축소·지연했고, 사건을 수사하던 일선담당자에게 외압을 행사했으며, 검찰의 압수수색전 관련증거자료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국정원 게이트>를 진두지휘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를 법무부장관(청와대)이 사실상의 수사지휘권을 행사해가며 가로막았다 ▶ 결과적으로 검찰 역시 정권 눈치보기 수사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상이 지금까지 밝혀진 <국정원 게이트>의 전모다. 만약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시스템이 동작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었다면 <국정원 게이트>가 일어날 리도 없거니와, 이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이렇듯 악취가 진동하는 결과들이 도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작금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할만큼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 새누리당의 NLL 공세, 새누리당의 고육지책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해서는 안되는 짓을 벌이고 말았다. 이는 정치적 스탠스와 추후 있을 법리적 공방을 떠나, 외교적으로 볼 때 전혀 국익에 도움이 안되는 막가파식 자해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속셈은 사실 너무도 뻔한 것이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할 뿐이었다. <국정원 게이트>라는 초대형 태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에 버금가는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NLL 논란'은 이를 위한 최상의 맞춤카드였던 것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대한민국의 수구·보수들을 위한 최고의 보험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색깔론'과 역시 이 땅의 수구·보수들에게 문제아로 낙인찍힌 '노무현'을 적절히 섞어놓음으로써 최상의 씨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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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누리당이 쳐놓은 덫에 민주당이 걸려든 형국이 되어 버렸다. 'NLL 논란'으로 새누리당은 <국정원 게이트>에 쏠려있던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과, 수세에 몰려있던 분위기를 만회하고 '색깔론'을 통해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에 침묵할 수 밖에 없던 보수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옛날 한나라의 대장군 한신처럼 새누리당이 'NLL 논란'에 불을 붙임으로써 정작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었던 <국정원 게이트>의 불을 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 어정쩡한 민주당의 대응 속에 <국정원 게이트>는 점점 빛이 바래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대화록 원본 공개'를 위해 '회의록 자료 제출 요구안'을 제의한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에 의해 공개된 회의록으로 이미 새누리당의 주장이 날조와 왜곡에 의한 것임이 명명백백해졌고, 이는 일반국민들뿐만이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어제 국내의 정치·외교·통일 분야 전문가 71명을 토대로 벌인 조사결과를 보면 이들 중 60% 가량이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이 적절했다'고 밝혔고, '적절치 못했다'라고 밝힌 사람은 25%에 불과했다. 또 91.6%가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잘못된 일'이라는 입장을 나타냈고, 응답자의 74.7%는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경실련의 조사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명료하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숨기기 위해 또 다시 불법을 저질러가며 남북정상회의록을 공개했다는 것과 새누리당의 주장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NLL'에 대한 발언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쯤되니 필자는 솔직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역할이 못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다. (이 와중에 여야 원내지도부는 어제 6월 임시국회 마감을 자축하는 폭탄주 회식을 가졌다. 민주당이 어떻게 이 국면을 바라보고 있는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대화록 원본을 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이 사안은 결국 남북정상들의 발언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자 가치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며, 대화록 원본과 발췌본의 내용이 크게 다르다면 모를까 앞으로도 새누리당의 주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초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발언을 남북정상회담에서 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정원에 의해 공개된 회의록 그 어디에도 그와 같은 발언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교묘한 발바꾸기와 본질흐리기로 일관하며 기존의 입장에서 전혀 물러섬이 없다. 이같은 사실은 새누리당의 입장이 대화록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초지일관 변치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애시당초 그들에게는 대화록의 내용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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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새누리당이 대화록 공세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정치적 목적과 이에 대응하는 국민들의 자세에 대한 글을 포스팅한 바 있다. 결국 새누리당의 전략은 적극적인 대화록 공세로 시간을 끌면서 소모적인 정치적 공방과 논쟁을 통해 국민적 피로감을 확산키는 데에 맞춰져 있었다. 이를 위해 방송과 언론을 활용, 이 사안이 최대한 가려질 수 있도록 철저히 보도를 축소하고, 보도순서를 조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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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를 보면, 대한민국 방송 3사가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정원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의 측면에서, 대통령 선거에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국현안이 과연 무엇이 있을지 필자는 의문이다. 민주주의가 정치공작에 의해 유린당하고 훼손당하는 것보다 더 중차대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필자는 모르겠다. 촛불정국이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때처럼 타오르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제1야당인 민주당의 어설픈 대응이 <국정원 게이트>라는 메가톤급 사안을 기획·자행한 공모자들인 국정원과 새누리당, 경찰과, 박근혜 정부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또 하나의 원인을 제공해 주고 있는 셈이다.
오늘 포스팅한 글의 중간에 잠깐 언급했듯이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 및 원내지도부는 새누리당과 언제든 합종연횡할 수 있는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할 뿐이란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방송과 언론이 사실관계를 보도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제1야당, 더구나 지난 대선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민주당이 배수진을 치고 전면에 나서서,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마땅함에도 그들에게는 어떤 비장함도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민주당은 국민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이제는 국민에게 밥상을 내놓을 생각을 해야한다. 민주당이 야당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방기한다면 국민은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을 먼저 버릴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새누리당의 성동격서를 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들의 공적인 분노뿐
<국정원 게이트>와 에서 드러나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왜 대한민국의 정치수준이 3류 양아치 조폭수준의 저질정치에 머물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저질정치를 지켜보는 것은 고달픈 일이며,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이 국민에게도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아야만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의 국민 그 누구도 불량정치를 양산하고 있는 집단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모두에게 해당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공모한 <국정원 게이트>를 응징하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깨어있는 국민들의 공적인 분노밖에는 없다. '성동격서'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은 상대방의 전략에 휘둘리지 말고 정공법을 택하는 길이 유일하다. 결국 새누리당이 들고나온 '성동격서'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제 온전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
부당함에 침묵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로 인해 국가와 국민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가늠키 어렵다. 국민들의 '공적인 분노'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부당함에 대한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사회공동체가 정한 규범과 질서를 무시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 역시 정당한 것이다.
당신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부당함은 정의로움을 갉아먹으며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로부터 미래를 훔쳐가고 있는 중이다. 이에 필자는 감히 말한다. 만약 이번에 바로잡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의와 공의는 당분간 우리 곁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을 당신들의 무관심과 당신들의 침묵이 짓밟아 버리는 것이라고.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