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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여야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회의록 열람에 전격 합의했다.
물론 이를 둘러싼 논란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정말 여야의 바람대로 논란이 쉽게 잦아질지는 의문이다.
실제 새누리당 윤상현, 민주당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2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2007년 10월3일 정상회담 회의록과 녹음파일 및 녹취록 등에 대한 열람 및 공개를 요구키로 했다.
또 국가기록원에 정상회담 사전준비·사후조치 관련 회의록과 전자문서 등 기타 조치 일체에 관한 열람도 공개를 요구키로 했다. 자료 제출 요구서는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우선 당장 열람 이후 사실 여부를 공개하기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 차원의 '2라운드'가 남아 있다.
현재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놓고 진실 공방이 뜨거운 만큼 원문을 공개해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왜곡 및 조작 여부를 확인한다는 입장이다. 또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회의록을 열람한 뒤 유출 과정의 책임 소재를 따지겠다는 결의가 대단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상인 문재인 의원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은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반면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하고, 국정원의 왜곡·조작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포기’라는 용어가 직접 들어 있지 않을 경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보다 더 큰 문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자료 일체에 대한 열람 및 공개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의 핵심적 국정행위 등을 기록을 통해 역사에 남기고 이를 일정기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재적 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공개가 되면 절차상으론 합법적 공개가 가능하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공개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관련 법률과 제도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국회의원들에게 공개된다고 해서 그 내용을 바로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국가기록물 관리법에 따르면 비밀 누설 금지 조항에 따라 열람 내용물을 누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용의 공개를 위해서는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만 한다.
그럴 경우 다른 대통령 기록물들은 어떻게 할지 등을 놓고 여야간 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갈등을 잠재우기 위한 여야의 대화록 공개 합의가 자칫 더 큰 갈등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공개 정상회담 내용을 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공개하자고 하면, 새누리당이 순순히 그에 응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여야 간에 치고받는 공방이 지금보다 더 치열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법을 개정해 가면서까지 대화록을 열람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는지 여야 정치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정상회담 대화록 같은 민감한 외교자료를 정략적인 목적에 따라 공개하는 것은 국익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국가 기밀자료가 정쟁의 수단, 상대 정당을 거꾸러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부디 여야 정치권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기 위한 합의를 즉각 취소하고, 이를 본회의 투표에 붙이는 일을 중단해 주기 바란다.
여야 각 정당은 대통령 기록물 원본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나 정치발전을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인지 이제라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