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 등 대한민국에서 치루어지는 중요한 선거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과 관련된 안보이슈다. 지난 대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선거기간 내내 논란이 되었다.
■ 정문헌 의원이 불을 지핀 NLL논란,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 의해 폭로된 'NLL 논란'은 대선을 불과 두달 앞두고 느닷없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원래 그의 주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비밀단독회담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수도권 철수를 언급했다는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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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단독 비밀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고, 이런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보관돼 있다" (2012년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
그러나 민주당과 노무현재단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그는 두 정상 사이의 대화록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말을 바꾼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라고 표현했었다고 주장하며 "(아니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정상 사이에 비밀단독회담도 없었고, 녹취록도 없었다. (이성을 상실한) 국정원이 최근 공개한 대화록 그 어디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다는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NLL을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없었다. 대화록을 통해 확인된 것은 새누리당의 정치공작은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져 온 정치공작의 유전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간악해지고 뻔뻔해지며 몰염치해진다는 사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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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의원은 지난해 10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의 주장이 "NLL을 지키기 위해 목숨바친 호국영령 앞에 사실"이라는 점을 밝히며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생명에 국회의원직도 포함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 포함된다"며 거듭 힘주어 말했다.
국회의원직을 포함한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호언장담했던 그였지만, 여전히 그는 당당하고 떳떳하다. "그 당시 기억이 오래됐다"며 '땅따먹기' 발언이 잘못된 것임을 시인했음에도 자신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 기억하는 몹쓸 병에 걸린 것처럼 사퇴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퇴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문재인 의원이라고 공을 넘기기까지 한다. 그는 국민을 손과 발이 되어 섬기고, 입과 귀가 되어 소통하겠다며 진심이 아니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 김무성의 고백, 이것은 지난 대선의 비밀을 밝혀줄 중요한 단서다
그리고 여기 믿음이 가지 않는 또 한사람이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이다. 그는 어제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어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당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이미 입수해서 읽어봤다고 깜짝 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선대위 총괄본부장의 직함으로 지난 대선을 지휘했던 새누리당의 중진의원이다. 그가 대선 전에 대화록을 읽어봤다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에서 'NLL'을 기획공작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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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그걸 몇 페이지 읽다가 손이 떨려서 다 못 읽었다"
"그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도 해 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좋고 해서 원세훈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도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해줘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한 것"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선 당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부짖듯이 쭈욱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기자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도 그걸 기사화하지 않더라. 그때 기자들이 내 발언을 다 녹음도 했을 텐데 왜 그때 보도되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 (대화록) 공개에 실패한 것이지 결국 그때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걸 가지고 자꾸 절차적 문제를 삼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이번에 확실히 이걸 강력히 밀고나가 진실을 가려야 한다"
김무성 의원이 어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 발언들이다. 그는 대화록의 원문을 대선 전에 입수해서 읽어봤고, 이를 부산유세(12월 14일 부산유세를 말하는 듯)를 통해 시민들에게 밝혔다고 말하고 있다. 그 자리에는 박근혜 당시 후보도 동참하고 있었다. 선거유세에서 대선후보조차 모르게 그토록 중차대한 발언을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당시 후보도 대화록 입수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이다.
■ 김무성의 고해성사가 의미하는 것
김무성 의원이 대화록을 입수한 경로는 당연히 국정원을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새누리당에게 유출한 것이다. 김무성 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대선에 활용하는 정치공작에 한 몸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국정원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해가며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한데 이어, 박근혜 후보의 대선승리를 위해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문제의 부산유세발언을 보자. 정문헌 의원으로 부터 들은 얘기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평통 행사에서 한 발언을 토대로 만든 문건이라고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부산유세에서 그가 한 발언들은 대화록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에게 하는 말이다. “그동안 외국정상의 북측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북측의 대변인 변호인 노릇을 했고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NLL공세는 논리도 없고, 남측에서는 이것을 영토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헌법문제라는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헌법 문제가 절대 아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 5년 내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갖고 싸워왔고 북측입장을 변호해왔다. 분명히 이야기 하는데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미국의 실수인데 북측보고 풀라고 하는데 이것은 부당하다는 것 다 알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미국이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오늘날 패권적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저항감도 가지고 있다. 작전계획 5029요구하고 있는데 못한다고 없애버렸다. 우리가 경수로 짓자고 말했다. 보고서 써내라고 말했다”
어떤가? 최근에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의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부분도 있다. 이것은 김무성 의원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새누리당은) 분명히 대화록을 사전에 국정원을 통해 불법적으로 미리 입수했고, 이를 대선에 적극 활용했다. 이는 지난 대선이 총체적 부정 속에 치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권선거의 징후들이 하나둘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파워블로거인 '아이엠피터'는 이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가 조작한 '국정원 대선개입' 시간대별 증거>라는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지면으로 옮길 수는 없기에 그가 정리한 시간대별 움직임을 이미지 작업한 것만 인용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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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의원에 의해 제기된 'NLL 논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이를 수사하던 경찰의 이례적인 대선후보 3차TV토론이 끝난 직후(밤 11시)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그리고 이후 경찰의 사건수사 지연 및 은폐·축소와 외압,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김무성 의원과 새누리당 대변인, 박근혜 당시 후보, 원세훈 전 국정원의 구속수사를 방해한 황교안 법무무 장관, 그리고 어제 고백한 김무성 의원의 대선전 대화록 유출에 이르기까지 이를 도식화하면 지난 대선에서 상상하기조차 싫은 그림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속속 드러나는 관련 정황들, 국민들이 바로 잡아야
필자는 대선 전 최초 국정원 사건이 붉어졌을 당시 대선판세를, 문재인 후보의 우세로 예상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그 부분, 바로 그 부분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 짧았다. 필자는 어리석게도 선거가 치뤄지는 그 당일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는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미 저들은 국가기관인 국정원을 동원해 최악의 관권선거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했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김무성 의원이 승리감에 취해 무심결에 한 발언이 지난 대선의 진실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저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대화록까지 왜곡해가며 '국정원 게이트'를 덮으려는 그 까닭을 말이다 .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국정원 게이트'는 역사상 최악의 관권개입이자, 불법정치개입사건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국민을 분노케하는 것은 '국정원 게이트'의 실체를 가리기 위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거듭된 거짓과 정치공작들이다. 저들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관련 사실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정치공세로 폄하하거나, 또 다른 정치공작을 통해 국면전환을 시도하려 들 것이다.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 바로잡지 못하면 먼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세대들에게는 뭐라 말할 것인가? 당신들의 시대는 불법과 부정 부패에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간 무책임한 시대였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가?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의 수준을 논하기에 앞서 이들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국민들에게도 있다. 거짓말을 용인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건강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없듯이, 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단단히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 국민이 나서야 비로소 이 저질의 정치를, 불법과 부정 부패가 만연한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저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국민들이 바꾸어야 한다. 국민들이 저들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