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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야 각 정당은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하느라 정당정치에 반(反)하는 공약을 남발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 대표적인 공약이 바로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대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중도하차한 안철수 의원이 기초단위 선거에 대해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안 의원과 후보단일화를 이루었던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문 의원이 그의 공약을 이어 받아 ‘공천폐지’를 약속했었다.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 역시 기초단위 선거에서의 공천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이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공천폐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천 폐지 회의론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선 공천폐지를 가장 먼저 약속했던 안철수 의원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정당공천제 폐지와 관련, “대선 때는 급하게 준비해서 다른 분야의 영향에 대해 검증이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이는 공천폐지 공약이 잘못됐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해야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역시 7월쯤 전당원투표를 통해 기초단위 정당공천체 폐지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문재인 의원이 대선 때 공약했던 것을 파기할 분위기가 역력하게 감지되고 있다.
결국 기초단위 선거에서 정당공천이 없더라도 영남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보수 성향의 인사들의 당선가능성이 높아 손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특정 정당의 이해득실 관계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지금 여성, 장애인 등 이른바 취약계층의 정치권 진입을 위해서는 현행 공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학계 일각에서는 ‘위헌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6대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실시하지 않았을 때의 폐해를 이미 경험한 바 있지 않는가.
당시 각 후보들이 정당의 주요 경력을 내세우는가하면, 홍보물에 정당 상징 색깔을 사용하는 등 오히려 유권자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따라서 비록 여야 각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웠더라도 그것이 잘못됐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라도 공천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정당의 책임정치를 후퇴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오픈프라이머리’라는 당내 경선 제도다.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시민참여’를 명분으로 이 제도를 일부 도입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당의 주인인 당원과 대의원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대단히 잘못된 제도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역선택’ 우려가 있는데다가, 정당 책임정치와도 맞지 않는 제도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당의 주인은 현재 당을 이끌고 지도부가 아니라 당원들이다. 따라서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한은 당원들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 결정권을 당 지도가 일방적으로 행사하거나 객(客)이나 다름없는 일반시민에게 권한을 넘겨준다면 그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특히 정당정치가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당이 공직후보를 선출하면서 일반국민에게 맡기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이자 포퓰리즘으로 ‘책임정치’를 후퇴시키는 대단히 ‘잘못된 혁명’이다.
여야 각 정당 모두, 공천폐지 문제와 오픈프라이머리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