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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는 28일에 개봉되는 스페인 섹스 소극 ‘난 진짜로 흥분했어’(I’m so Excited)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인터뷰했다. 난 늘 하던 대로 인터뷰 후 그와 사진을 찍을 때 “아 앰 프롬 코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페드로는 “노스 오어 사우스”라고 물었다. 물론 페드로가 내가 사우스 코리안이라는 것을 알고도 농담으로 한 말인데 난 이 말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분단 조국을 생각하며 통일을 아쉬워했다.
분단 조국에 혈흔을 남긴 6.25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지 얼마 안 돼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가사가 무차별 공격적이다)이다. 한국사람 치고 직ㆍ간접적으로 6.25의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나도 이 동족상잔의 피해자 중 하나다.
매년 6.25만 오면 생각나는 것이 내가 소년시절 피난살이를 한 부산이다. 우리 가족은 부산서 4년 정도 살았는데 난 사실 이 때 고독과 간난의 타향살이를 하면서 다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뒤의 성장은 부산 시절의 연장일 뿐이다. 특히 당시 내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이 G.I. 문화로 할리웃 영화와 허시 바와 리글리 껌은 백지 같은 내 마음에 미국이라는 ‘황금향’의 지도를 그려 놓은 주체들이다.
귀화한 미국인인 내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을 그리워하듯이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은 다 망향증후군 환자들이다. 그리움이 사람 죽이는 것은 마치 암세포의 성장처럼 내밀하나 치명적이다.
요즘도 가끔 내가 술을 먹고 집에 돌아가 유튜브를 통해 내 고교 선배 현인이 부르는 ‘굳세어라 금순아’와 남인수가 노래하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들으며 청승을 떠는 것도 이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리움이 달래지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는 셈이다.
난 지난 2010년 10월 부산영화제에 참석했다가 내 소년시절을 되밟아보려고 내가 살고 공부하고 영화를 봤던 동네를 샅샅이 찾아다녔다. 셋방살이 하던 범일동과 내 생애 첫 영화를 본 동네 삼일극장, 천막학교가 있던 용두산과 어머니가 장사를 하시던 산 밑 동네 광복동과 국제시장 그리고 피난 가고 그 생활 끝난 뒤 귀향할 때 탔던 기차역 부산진역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다.
그 때 용두산의 부산타워에서는 한국전 후인 1953년 11월부터 1년간 한국의 전후 재건을 위해 미 공병으로 부산에 주둔했던 클리포드 L. 스트로버스가 당시 부산과 서울을 비롯한 한국과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찍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스트로버스는 현 부산 대청동의 가톨릭센터의 전신인 메리놀의원 건설에 참여했었다.
개천가 판잣집과 부산항 인근의 텐트촌, 목판에 초컬릿과 양담배와 껌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사진)와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소년 그리고 대낮에 길바닥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지게꾼과 먹다 남은 샌드위치 봉투를 쳐든 G.I.에게 몰려들어 팔을 들어 올리면서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니 저 아이들 중의 나와 내 과거가 재생돼 영화처럼 파노라마 치며 눈앞에서 돌아갔다.
노천식당에서 부대찌게(당시 내 별식)를 파는 아주머니와 들어 올려진 영도다리, 거리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와 바지를 안 입어 고추가 드러난 꼬마 그리고 아기를 업은 채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아주머니와 양키 군모를 쓴 거리의 이발사와 갓을 쓴 점쟁이 및 활기찬 광복동의 PX 거리 등을 감상하면서 그립지만 어찌 보면 모멸의 시대가 안쓰러웠다.
스트로버스가 찍은 사진들을 수록한 책 ‘컬러로 만나는 1954년 Korea’가 두모사에 의해 출판됐다. 컬러와 흑백으로 찍은 전후 한국과 한국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귀한 책인데 스트로버스가 아이오와 농촌 출신이어서 한국 농촌의 정경을 찍은 사진들이 많다. 초가와 머리에 땔감을 진 소녀, 갓 쓰고 장죽을 손에 쥔 할아버지들 그리고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단발의 시골소녀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옛 정취가 흙냄새처럼 묻어 나온다.
그런데 스트로버스가 한국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찍은 사진에 단 설명을 보니 아버지는 ‘파파산’이요 어머니는 ‘마마산’으로 적혀 있다. 한국전 때문에 돈을 번 일본식 표기다. 책은 또 스트로버스가 찍은 ‘폭탄 맞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진과 요즘의 중앙우체국을 찍은 사진을 나란히 게재,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여준다. 부록으로 당시 일본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수록됐는데 찢어지고 망가진 한국의 몰골과는 달리 말끔하고 깨끗하다.
중학교 때 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신 안병원 선생님이 지으신 노래처럼 ‘통일이여 오라, 통일이여 오라’. 그런데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