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것이었나? 새누리당과 국정원,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해 만든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란 것이 고작 이런 것에 불과했나?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결과물을 받아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자신들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고 다시 유에서 무로 조작해 버릴 수 있는, 비루하고 간악한 음모가 판치고 있는 곳이 바로 정치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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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어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했다.
■ 국정원, 이성을 상실하지 않고는 이럴수는 없다
일단 국정원이 새누리당에 넘겨 공개한 이날 문건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 있는 정본은 아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정부는 회담의 내용을 담은 대화록 2부를 만들어 한 부는 대통령기록관에, 다른 한 부는 국정원에 보관토록 했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문건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의 적용을 받고, 국정원에 보관된 문건은 '2급 기밀'로 공공기록물 관리법상 공공기록물로 분류되어있다. 국정원이 이날 공개한 문건은 '2급 기밀'인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멋대로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한 것이다.
문건 공개에 따른 법리적 판단은 잠시 유보하더라도(국정원의 조작 가능성 역시 차지하고라도) 이날 국정원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짓이다. (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정원이 대통령의 통상적인 국정수행조차 정보수집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작태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될대로 되라는 심산인지 국정원은 불법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어 놓더니, 그것도 모자라 다시한번 국가기강을 무시하며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어 버렸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이렇듯 '국정원 사건'의 실체를 가리기위해 책임도 못질 나쁜 선례들을 거듭 남기고 있다.)
■ 새누리의 NLL, 그 실체를 말해볼까?
필자는 어제 글의 제목을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노무현의 이적행위, 새누리의 이적행위'란 글을 포스팅했다. 그러나 원래 초고에는 글의 제목이 이와는 달랐다. 초고는 '새누리의 NLL 공세, 그 실체를 까발려주마'였다. 그 글에서 필자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합작해서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플랜을 사이에 두고 두 정상이 나눈 대화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할 뿐이고 설명했다.
어제 국정원이 공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내용은 필자가 예상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대화록의 그 어디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통해 NLL을 평화·경제 지도로 덮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공개된 문건 어디에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를 언급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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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처럼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본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2012년 9월 13일 한국지방신문협회 소속 9개 주요 지방일간지와 공동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 새누리당의 논리라면, 박근혜 대통령도 NLL 및 DMZ 포기한 것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서해에서 기존의 남북 간 해상경계선만 존중된다면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또 이런 발언도 했다.
"기본적으로 역대 정부가 약속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 것이다. (남북합의 가운데) 재정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되는 부분이 있어 국회 동의를 받아야 된다든지, 안보 상 보완해야 할 문제가 있다든지, 남북 간 기본 인식이 차이가 난다든지, 민간 차원에서 해야 할 것은 충분히 기본 틀에서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원론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당시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이 둘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각색하고 가공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내용은 180도 달라진다.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을 포기한 사람으로, 다른 한 사람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정치적 제스쳐를 취한 사람으로 이미지가 조작되어 버린다. 그런면에서 정치처럼 비열하고 잔인하며 속물적인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국정원 사건을 희석시키려 국정원과 새누리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날조·가공한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야말로, 정치 그 비루한 것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 왜곡'이 용인된다면 이후 민주진보세력 역시 집권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이전 발언들도 얼마든지 가공해서 정치쟁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방미 기간 중에 비무장지대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발언 역시 '비무장지대 포기 발언'으로 얼마든지 확대 재생산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정도란 것이 있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그 정도를 넘어 너무 멀리까지 나갔다. 그것도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 정당하지 못한 국가권력, 국가와 국민을 좀먹는 해충과 같다
언론과 방송을 장악한 정치권력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마음만 먹으면 없는 사실도 창조할 수 있고, 있는 사실도 전혀 엉뚱하게 조작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하고 합리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시민사회와 언론·방송을 통해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 스스로 적극 앞장서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분산시키려 했던 이유도, 탈권위를 주창했던 이유도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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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권력 그 자체가 절대악은 아니다. 정치권력은 정당 혹은 정치인의 정치적 목적과 이상을 보다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조율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국정원은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우는 선거, 그중에서도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차대한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국민의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공정하게 치루어져야 할 선거가 불법과 부정으로 얼룩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국정원 사건' 이후에 드러나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경찰과 검찰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불법과 부정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머리숙여 사죄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사실을 은폐·조작하며 적반하장식 정치공세로 일관하고 있다. 매를 덜어야 할 시점에 매를 더 벌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매를 맞아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 새누리, 저 비루한 자들의 카니발
새누리당은 지금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축제는 참으로 이상한 축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헌법이 정해놓은 규칙을 어겨가며, 국민의 축제가 되어야 할 대통령 선거를 유린한 국정원의 불법부정선거에 대한 진실이 감추어지면 질수록 그들의 축제는 더욱 더 화려한 성찬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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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파괴되는 처참함을 오히려 즐기고 있다니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이제 새누리당, 저 비루한 자들이 벌이는 축제에 국민들이 개입할 차례인 것 같다. 국민들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국정원, 이를 비호하는 새누리당과 정부에게 국민들이 지닌 위대한 힘을 보여줄 차례다. 그래야 서로 공평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부당한 권력은 국민들의 정당한 힘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의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