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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고사리를 따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도 차에 태우고 가서 한보따리 따 왔습니다. 굳이 깊은 곳까지 갈 필요도 없는 게 시애틀의 고사리따기입니다. 시애틀의 봄 여름 가을은 '채집 경제'로 살기에 딱 좋습니다.
봄이면 조개를 캐거나(물빠질 때 캐면 나오는 레이저 클램이라는 맛있는 조개가 있습니다. 구이덕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이곳만의 명물 조개도 있지요. 아, 키조개나 새조개도 맛있죠. 구이덕만은 못해도.) 산나물을 캐러 다니고, 여름이 다가오면 높은 산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고, 가을이면 사과를 따러 다니고... 겨울엔 피어(부두)에서 오징어(더 정확히 말하자면 꼴뚜기?)를 훌치기 낚시로 낚고... 그리고 보면 오징어 낚시 도사님들은 냉동고 안을 오징어로 가득가득 채웠다가 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그건 우리에게 뜻밖의 즐거운 양식이 됩니다.
고사리를 따가지고 오면 할 일이 많습니다. 다듬어야죠, 삶아야죠, 그리고 해 쫙 날때 잘 말려줘야죠... 며칠동안은 집안에 고사리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고사리를 해 먹을 생각을 했던 걸까요? 저 고사리를 삶아 말리면 매우 얇은 말린 고사리가 되는데, 그걸 물에 불려서 다시 먹고... 그저 신기합니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이야기겠지요. 먹어보고, 탈도 나 보고... 이걸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를 나름으로 연구했을 거고, 그러다가 먹는 방법을 개발해서 그걸 나눴겠지요. 고사리엔 독이 있어서 그냥은 못 먹고, 이걸 어떻게든 그 독성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내다니, 정말 그 지혜가 놀랍습니다.
이런 지혜가 자리잡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정치에서도 더 많은 시행착오들이 일어나고, 우리 국민이 모두 정치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을 하고, 독이 많은 것들과, 그리고 잘못 먹으면 탈 나는 것들을 가려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요?
군부독재 종식은 3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훨씬 더 기다려야 국민 모두가 이런 지혜를 나눌 수 있을련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보수 중에서도 표창원 교수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제대로 된 보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과, 자각하고 깨어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의 진상과 그 의미를(행정부 조직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깡그리 무시한 반 체제적인) 알고 분노하고 항거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독초를 식용으로 알고 잘못 먹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냥 죽거나 토하거나입니다. 토하는 법까지도 알려줘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겠습니까만, 다행히 토한다는 것은 몸의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이고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제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참담하겠지요.
그래도 많은 이들이 지금 이명박근혜 체제를 겪으면서 구토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토증을 참지 못해 함께 분노하고 일어나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우리 몸의 자기방어기제 작동이기도 하고, 고사리를 삶아서 그 물을 버리고 말리는 지혜의 연장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