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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에 대해서는 벌이 따르기 마련이다. 인과응보이다. 잘못에 대해 제때 벌을 받으면 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벌이 내려져서 당시에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양육이다. 자녀가 다 자라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아이가 어릴 때 왜 좀 더 신경을 쓰지 못했을까” 후회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자녀가 곁길로 빠진 경우, 부모와의 관계가 냉랭한 경우, 학업이며 취업에서 계속 실패해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경우 등 자녀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르니 부모에게 이 보다 큰 벌은 없다.
지난 주말 샌타모니카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23살의 청년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그의 부모를 떠올렸다. 그 나이가 갖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며 속으로 눌렀던 분노가 폭발하고, 정신질환의 기질이 증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보통 20 전후이다. 따뜻한 부모 밑에서 세심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지난 연말 코네티컷의 샌디훅 초등학교 난사사건, 지난해 7월 콜로라도 오로라의 심야극장 총격사건, 2011년 초 애리조나 투산 사건 등 대략 반년마다 한번씩 발생한 무차별 총격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정신질환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이번에 아버지와 형을 포함, 5명을 죽이고 경찰에 사살된 존 자와리 역시 대단히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정신질환 병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의 자녀양육 성적표로는 최악이다.
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순간 자와리의 아버지는 어떤 후회를 했을까. 아들이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다가 경찰에 사살된 지금 그 엄마는 어떤 심경일까. “왜 그때 …” “왜 좀 더 …”의 후회들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밀려들 것 같다.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분노의 대상을 총으로 응징하는 사건은 미국에서 늘 있어왔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구 총을 쏘아대는 사건이 요즘처럼 잦은 적이 없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적되는 것은 총기와 정신질환이다. 자와리와 같이 ‘정신병력 가진 무직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만큼 총기가 널려있고, 인권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본인 동의 없이는 가족조차 정신질환자를 입원·치료받게 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개 외톨이인 그들이 인터넷을 뒤져 총기를 찾게 만들고, 세상을 향해 미친 듯 증오심을 터트리게 만드는 근본 원인은 따로 찾아야 할 것이다. 총기가 있다고, 정신질환이 있다고 모두 총을 들고 나가 쏘아대지는 않는다. 실제로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매우 낮다.
무차별 총격 같은 광적인 폭력의 뿌리는 많은 경우 치유되지 않은 상처이다. 어릴 적 상처가 너무 깊어서 치유되지 못한 채 뱀처럼 똬리를 틀고 의식을 짓누르는 케이스들이다. 거기에 정신질환까지 겹치면 어느 순간 지옥 불같은 기세로 폭발하곤 한다.
자와리의 케이스가 그런 예이다. 레바논 이민자인 자와리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칼을 들이대고 머리채를 휘어잡을 정도로 폭력이 심했다고 한다. 그의 엄마는 남편을 피해 매 맞는 여성 보호소로 피신하기도 했고 몇 차례 별거를 거듭하다 이혼했다.
서너 살 때부터 부모가 별거하고 합치는 불안정한 환경, 불같이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공포 속에서 소년은 말을 잃은 외톨이가 되었고, 엄마는 그 자신 폭력에 시달리느라 아이에게 제대로 관심을 기울여 주지 못한 것 같았다. 위로 받지 못한 영혼의 상처는 깊어지고, 억압된 분노로 망가진 정신에 병이 들면서 청년은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결국 총기난사로 폭발시켰다.
세상이 불안한 것은 사람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상처 없이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 부모와 긴밀한 관계 속에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가정은 너무 쉽게 깨어지고 부모는 일에 매여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농부가 자주 찾아가 볼수록 농작물은 튼실하게 잘 자란다. 자식농사도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여다보고 충분히 사랑을 주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미주한국일보 2013-06-15 토)
<권 정 희;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