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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 인류문명의 꽃이 핀 동방 한국으로 다시 문명의 열매들이 돌아 오는 시대다. 그래서 환태평양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륙과 해양이 연결되는 한반도 지역이 그래서 전쟁과 갈등없는 평화지역이 되기를 세계와 주변 강대국들인 미.중.러.일도 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오로지 세습독재왕조유지와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핵무장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면서 세계의 문제국가 수준으로 낙인찍혀 있는 북한 김일성 흉노왕조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민족공동체와 민족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초를 친다면 후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당사자되는 우리 민족이 분단선을 두고 대립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한다면 주변 국가들도 긴장할 수 밖에 없고 군사적 무장을 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의 과거사 망언들과 함께 군국주의 복귀움직임이 그런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영토도 크고 인구도 많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을 중시하는 경제대국 수준에서 그런 폼을 잡는다면 세계인들이 생각하기도 "강대국이니까 그럴만도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최극빈국에다 인권상황이 최악이고 굶주려 자기나라를 탈출하는 거지국가 수준의 최악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핵무기 가지고 폼 잡는 건 <개폼.똥폼잡는다>라고 무시하지 않겠는가! 북한을 혈맹으로 생각했던 중국까지 이제는 북한을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세계와 주변국가들의 북한에 대한 시각이고 관점이다.
대한민국은 평화와 홍익를 추구하는 민족이다. 세계의 핵무기 철폐 또한 우리 민족이 앞장서서 폐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세계양심에 호소하고 요구해야 씨알이 먹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양심도 세계 핵무장은 인류를 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는 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한반도를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여 무역과 교류하는 평화중립지대로 만들면서 동아시아를 핵무기없는 단군조선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엔을 리드하는 세계외교중심국가가 되어 세계를 핵무기와 전쟁과 병과 기아없는 대동홍익세계로 만들어 갈 때 우리 민족 스스로 홍익인간민족이라 자부할 수 있으며 세계의 추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흉노왕조는 비핵화 선언과 함께 6자 회담복귀선언과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사업재개를 위한 정부간 실무회담에 조속히 응해야 할 것이며, 남과 북의 8천만 민족의 무제한 자유왕래와 거주이전,그리고 경제활동을 보장함으로써 한반도평화와 한반도통일국가 건설의 결정권을 남과 북의 분단권력은 8천만 민족에 맡길 것을 재차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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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왕조, 자신들이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임을 비문에 밝혀..
신라 문무왕 비문이나 김인문의 비문에 기록된 ‘투후’는 [한서]기록에 의하면 한나라에 포로로 잡힌 흉노족의 태자 김일제이다. 죽은 후 무덤이 한무제 무덤 옆에 자리하게 된 그는 한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포로가 되었고,
흉노족이 금으로 만든 인물(흉노조상-김천씨)상을 만들어 섬긴다하여 한무제에 의해 김씨 성을 하사받고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어 한무제의 목숨을 구해 주기도 하여 한무제가 딸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으려 했으나, 김일제가 거부하였고, 결국 산동성을 다스리는 투후로 임명되었던 실존 인물이다.
김일제 집단은 한나라 왕실의 권력을 장악한 왕망이 흉노계 신나라를 세우는데 적극 지원하였으나, 후한 광무제에게 망하자, 멸족을 피하여 산동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가야의 구지가나 신라의 김알지 신화는 다 그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신라 문무왕 김법민은 비문에다 자신들은 흉노족으로 한나라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며, 신라 김씨왕조를 세운 인물은 김일제의 7대손인 성한왕이라고 기록했다.
따라서 고고학적으로도 신라 김씨왕족이 감숙성 지역에서 지나대륙을 거쳐 한반도까지 유입된 흉노족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김춘추.김유신.김일성 등 족보를 날조하지 않는 오리지날 김씨족의 고향은 본래 감숙성 지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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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국호는 법령을 공포하고 불교를 국교화하여 민심을 통합하여 신라의 중앙집권화를 실현한 법흥왕의 아버지가 되는 지증왕 시기에 정해진 것이다. 지증왕은 초원세력의 풍습인 순장을 금지하고 한반도의 농경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과 법흥왕의 딸이 혼인하여 낳은 자식이 신라의 영토를 넓힌 진흥왕인데, 진흥왕은 어릴 때 즉위해서 어머니가 섭정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화랑제도를 만들고 신라왕조의 족보를 부여인이였던 박혁거세와 왜인으로서 사로국의 왕에 오른 석탈해까지 이어붙인 국사를 편찬하게 하여 신라을 통합하는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점이다.
신라가 김씨왕조로 외부에 알려진 시기는 진흥왕 때부터이다.
신라 법흥왕은 본래 성과 이름이 모진인데, 김원종으로 개명을 했다. 이는 4세기 선비족에 흡수된 흉노족이 모용선비족의 성씨를 사용했다가 모용선비족의 고구려 정벌전쟁에 참여했다가 동해안을 따라 경주로 유입되어 박혁거세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신라왕조를 세운 후에 김일제 성씨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주지역에 대형 왕급 규모의 초원세력의 무덤인 적석목곽분을 남긴 집단은 4세기 고구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한반도로 유입된 흉노족이다.
그리고 중국대륙에서 흉노계 신나라가 후한 광무제에 망하자, 한반도로 망명한 김일제 후손인 김알지 세력과 통혼을 하여 신라 김씨왕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뿌리로 올라 가면 두 세력 모두 흉노족이기 때문에 흉노왕자였던 김일제를 뿌리로 삼고 나당동맹으로 백제.고구려를 정벌한 문무왕은 자신의 비문에 자신있게 자신들의 뿌리와 혈통을 흉노족으로 밝히며 흉노족이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했음을 비문에다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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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했던 흉노족의 거점지역이였던 감숙(甘肅, Gansu)성의 기련산(祈連山흉노족의 성산)은 설산과 잔디의 명산이다.
조각한 듯한 험준한 설산이 하늘을 찌르고 부드러운 라인의 잔디산이 펼쳐져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설산의 산 허리에 감도는 안개와 푸른 잔디에서 풀을 뜯는 말과 양떼, 그 산 자락으로 흐르는 시냇물, 철따라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는 나무, 더 가까이 펼쳐진 인가들 모두가 비경이다.
인간이 살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나,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으로 중개 무역의 거점지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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