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스포츠, 그 중 특히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룰에 보면 베이스가 모두 채워져 주자가 만루인 상황에서 투수가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 상대편이 득점을 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어 야구용어로 '밀어내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야구중계를 보다보면 아나운서들이 이런 상황에서 "밀어내기로 한 점을 얻었습니다, 밀어내기네요"라는 표현을 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야구용어인줄만 알았던 '밀어내기'가 야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폭우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남양우유 영업사원 욕설 파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때때로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다른 이질적 세상의 모습을 비춰준다.
■ '조폭우유', 세상을 향해 '무죄'를 외치다
주문량보다 더 많은 제품을 대리점에 강매하는 것을 의미하는 '밀어내기' 혐의로 남양유업의 영업사원들은 현재 검찰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밀어내기'등의 잘못된 관행이 있었음을 시인했던 저들이 검찰조사에서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사를 받은 영업사원들은 하나같이 '밀어내기' 혐의를 부인했고, 업주들이 주문한 물량을 임의로 부풀려왔던 '전산 조작'에 대해서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보기)
우리 사회를 향해 '갑'과 '을' 사이의 불합리한 구조적 폐단을 돌아보게 만드는 '갑과 을 시리즈' 제3편(1편은 '라면상무', 2편은 '빵회장')인 '조폭우유' 파문은 다른 두 사건의 파장이 잠잠해졌고, '갑과 을 시리즈'의 블록버스터 최신작인 '윤창중 성추행 사건'에 힘입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양유업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행운을 걷어차버리고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다시한번 '조폭우유'에 주목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쥐죽은 듯 숨죽이며 파문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북치고 장구치며 매를 벌고 있는 남양유업의 무모함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 '조폭우유'를 향한 '을'의 반란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과 폭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 약자였던 '을'의 반란이 이어졌다. '부도덕한 기업'이란 이미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소비자와 시민단체, 소매업주들을 중심으로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위기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
회사측으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기로 한다. 그러나 기자회견 몇일 전 이미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도 뒤에서는 대리점주들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남양유업이었다. 이미 국민들의 마음 속에 이 '부도덕한' 기업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깨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자리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는 파문 직전 70억원의 자사주식을 처분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던 터였다.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빠진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은 그래서 더더욱 국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결국 기자회견 이후에도 남양유업을 바라보는 국민여론은 여전히 싸늘했고 이는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남양유업측에 따르면 영업사원의 막말 녹취록이 공개된 후 전년대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30%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욕설파문 이후 10일 동안 매출이 20일 전보다 무려 50%가량 떨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 '조폭우유' 그 기만의 처세술
|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련의 사태에 대해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진심으로 고개 숙여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중략)...영업현장에서의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이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와 관련해 현재 진쟁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잘못된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개선 조치하겠다...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한다며 꼿꼿한 머리들을 조아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허공을 향한 헛된 움직임에 불과했다. 사과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이후의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남양유업의 이날 사과에는 눈꼽만큼의 진정성도, 과거 잘못된 관행과 부도덕함에 대한 자숙과 성찰도 없었다. 오직 회사의 위기를 모면하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기만의 처세술만 있었다는 것이 검찰의 조사에 응하는 저들의 태도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이들은 현재 대형로펌으로 변호인단을 꾸려 검찰과 맞서고 있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려는 듯 국민 앞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시인하며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남양유업이 국민 뒤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부인하며 최고의 변호사들을 꾸려 법리적 공방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으니 이제 할 일 다했다는 심보라면 참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는 작태다.
|
요즘 들어 '국민'을 들먹이며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국민'을 자주 거론하는 군상들치고 제대로 된 사람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필요할 때만 '국민'을 입에 담으며 자신들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라도,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이 '조폭우유'는 국민들로부터 매를 좀 더 맞아야 할 것 같다. 아,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이것은 사랑의 매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