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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측 손해배상 소송 철회로 마무리 된 한진중공업 시신 투쟁
지난 2월 24일 노조탄압에 항거해 지난해 12월21일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 최강서씨의 장례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만남의 광장'에서의 발인식을 거쳐 공장 정문앞에 차려진 영결식장에서 야권 정치인과 노동자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최씨가 목숨을 끊은지 65일만이자 노조가 최씨의 시신을 떠메고 공장으로 진입하여 시신투쟁을 벌인지 25일 만이었다.최씨의 장례가 치러짐으로써 시신투쟁도 끝났다.서민대중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던 한진중공업 시신투쟁이 끝나게 된것은 최씨가 목숨을 끊게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15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회사가 철회하고 휴업자 복귀 등 4개항에 노조와 회사가 합의하고 조인함으로써 문제가 해소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아울러 최씨 유가족의 위로금 문제도 별도 합의키로 하였다고 한다.그동안 최씨의 주검을 앞세운 시신투쟁이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손배소 소송을 회사측의 철회로 끝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번 한진중공업노조의 시신투쟁은 죽은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게 만든 것과 흡사하다.
시신투쟁이 계속된다면 대통령 취임식이라는 경삿날에 재를 뿌리게 되게되고 그렇게 된다면 한진중공업측은 158억원으로 노조 등골뽑고 노조투쟁동력 와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정권에 찍혀 자칫하면 회사운명이 백척간두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시신투쟁에서 피어나는 경고를 무시할 수 없어 대통령 취임식 전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경과가 어찌 되었든 좋은 방향으로 결말을 보게 되었음은 목숨을 끊은 고인과 유족, 한진노조,회사 모두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직접적인 관련자가 아닌 필자가 시신투쟁 전개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안타까워 했던 것은 시신투쟁이 남의 일 같지 않았었기 때문이다.필자도 시신투쟁 일보직전 상황을 실제 경험한바 있다.
부대로 시신을 떠메고 오겠다던 지난날 시신투쟁 경험담
미사일부대 지휘관으로 근무하던때였다. 당시 우리 부대는 육군본부에서 실시하는 '육군전투력 검열'에서 검열대상 부대가 아니었음에도 예고없는 검열단의 불시검열 결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전투력과 완벽한 기지 경계태세를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아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
검열을 마친 후 겸열결과에 대한 강평에서 검열관 중령 네명과 겸열단장 대령은 "전후방 사단급 전투력 검열을 다 다녀 보았지만 이처럼 완벽하게 전투준비태세를 갖춘 부대는 본적이 없다"면서 검열단 명의로 참모총장 표창을 상신하겠다고 하였다. 그후 며칠안돼 참모총장 표창이 내려왔고 사령부로부터는 하루가 멀다하고 참모진들로부터 격려전화가 쏟아졌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할까. 좋은일에 마가 낀다는 말을 실감하는 일이 발생했다. 육본 전투력 검열이 끝난지 보름쯤 지난 수요일이었다. 오전 9시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인사계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목소리도 심하게 떨렸다. "뭐라구요. 다 죽었다구요" 인사계가 다 죽었다고 하자 회의에 참석했던 간부들도 얼굴빛이 싹 변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다 죽었다는 인사계의 목소리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꽝'하는 폭발음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사대에서 폭발사고가 난것은 아닐것으로 나는 직감하고 나는 태연한 모습으로 인사계의 보고를 기다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인사계는 다급한 목소리로 "포대장님, 보급품 수령차 출발했던 저희 차량이 충돌사고가 발생하여 선탑자 0상사와 운전병이 모두 죽었다고 경찰 검문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선탑자와 운전병이 모두 죽었다는 인사계의 말에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나 또한 가슴이 철렁하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인사계에게 "그럴리가 없어요.우리 부대 포차는 범퍼도 강철로 되어있어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다면 상대방 차량이 박살이 났으면 났지 선탑자와 운전병이 사망할 정도로 우리차량이 부서졌을리가 없어요. 검문소에 다시 전화해서 정확한 사고내용을 파악해 보세요. 사실이 아닐겁니다"
인사계에게 지시한 후 나는 회의를 계속했다. 조금 있으려니 경찰계통을 통해 사고현황을 파악한 인사계가 "저희 부대원이 사망한게 아니고 저희차량에 아주머니가 치어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사망자 시신은 시내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었고 선탑자와 운전병은 파출소에 조사 대기중에 있습니다" 선탑자와 운전병이 사망한게 아니고 민간인이 사망한 인명사고 라는 인사계의 보고에 간부들은 안도하면서도 인명사고가 났다는 사실에 모두들 얼굴표정이 어두웠다.
부대를 지휘함에 있어 사고는 비효율적 전투력 손실이고 부대 사기저하의 요인이므로 철저한 안전관리를 통해 무사고 부대를 만드는게 최상이다. 그러나 당시 필자는 국가안보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불가피한 희생과 사고는 감수해야 하고 또 그러한 희생과 사고를 무서워해서는 안된다는 지휘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발생한 것이므로 부대가 동요하지 않고 전투력 검열 최우수 부대답게 고도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후처리에 만전을 기하는게 지휘관으로 조치해야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인사계의 보고가 끝나자 나는 "인명사고 났다하여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큰일을 하다보면 사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부대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하고 사격통제대와 발사대 전 병력은 최소작전 인원만 남겨놓고 전원 연병장에 모여 축구게임으로 분위기가 침체되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랍니다. 인사계는 막걸리 세말과 돼지고기 2-3십근을 사다 돼지찌게를 끊여 축구가 끝나면 전 부대원이 회식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기 바랍니다" 축구게임과 부대 회식으로 사고후유증을 당일로 날려보내기로 한것이다.
회의가 끝난후 50대 초반의 최고령 연장자이자 최고참 간부인 정비반장 준위와 상사 2명으로 하여금 포대장 명의로 된 조화를 준비해 고인의 빈소에 비치하고 상주 등 유족을 위로토록 하는 한편 빈소 주변 여관방을 유족과 문상객들 대기장소로 준비하여 간부를 배치, 문상객들을 정성을 다해 안내하도록 조치했다.
우선적으로 조치할 사항을 임무분담시킨후 파출소로 향했다. 경찰 파출소에 도착하니 선임 탑승자와 운전병이 넋나간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껄껄껄 웃으며 운전병의 등을 다독거리며 "0일병 기죽지 말고 힘내라. 네가 사고 내고 싶어서 낸게 아니지 않나. 나라를 지키다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이다. 모든건 포대장이 알아서 조치할테니 너는 아무 걱정말고 부대 복귀할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며 마음을 안심시켰다.
혼쭐이 날 것으로 생각하고 안절부절 못하던 운전병은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나의말에 마음이 놓이는 듯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선임탑승자로 부터 들은 사고 경위는 앞서가던 버스가 승객을 내리기 위해 마을앞에 멈추었다고 한다.그때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려 버스를 따라 갔으면 사고가 안날수도 있었을 테지만 마을마다 버스가 멈추기 때문에 가능한 추월하는게 관행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도 추월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추월을 한게 사고로 연결된 것이었다. 우리 차량이 버스를 추월할때 버스에서 내린 마을 아주머니가 버스뒤쪽에 그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하며 건너지 않고 버스 앞으로 건너려다 때맞춰 추월하던 부대 차량 범퍼에 떠받쳐 공중으로 붕떳다 머리부터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절명하였다고 한다.
우리차량이 버스를 추월하지 않았거나 아주머니가 버스앞으로 건너뛰지 않고 버스 뒷쪽 횡단보도를 이용하였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상식적으로 사고가 날 수 없는 곳에서 사고가 난것을 보면 운전병이나 아주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