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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정말 심하게 불고, 비도 많이 내립니다. 전형적인 서북미의 늦겨울 날씨입니다. 아마 오늘 하루종일 비라는 비는 다 볼 수 있겠지요. 이곳에서 23년 가까이 살았으니 익숙해질만도 한데, 그래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마음이 심난합니다. 시애틀을 커피의 도시로 만든, 바로 그 전형적인 날씨입니다. 아마 카페인이 없다면 정말 우울했을 듯 합니다.
저는 이곳의 우체부. 이 정도로 비가 내리는 날은 비옷, 그러니까 판초 우의를 뒤집어쓰고 일을 해야 했을텐데, 다행히 비번날이라서 오늘 이 비를 맞고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위안입니다. 그러나 집안일도 만만치 않아서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게 많습니다. 뒷마당의 낡은 울타리 담의 일부가 바람과 자라나는 큰 나무 뿌리 때문에 소실되어 이걸 고쳐야 하고, 낡은 자쿠지 스파도 고쳐야 하고... 지원이 태어난 이듬해 이사온 이 집도 손봐야 할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는데 보통은 이 우기가 지나고 시작해야 할 일들이어서 날씨 맑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4월이면 비 오는 날보다는 맑은 날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집 손보는 사람들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그런 경기가 이 몇년동안은 전같지가 않았던 것이 집을 지켜봤자 손해보는 사람들이 이자 부담을 피하려 아예 집을 내팽겨치고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주택 경기가 늘었다고 하지만, 시애틀 타임즈의 토요일 부동산 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조차도 양극화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갓 결혼한 부부들이 규모가 작은 집을 사는 경우라던지, 혹은 학군이나(이곳에서도 학군 문제로 이사를 결행하는 한인들의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은 유명합니다) 다른 문제로 커다란 저택들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 중간규모의 주택 거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인듯 합니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수입을 갖고 그것을 소비함으로서 생산을 자극하는 매우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모습이 미국의 안정 모델이었고, 사실 그것을 오랫동안 받쳐줬던 것은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빌려온 복지 모델들이었습니다. 뉴딜은 그 대표적인 정책이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대로 토건에 돈을 쏟은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다시피 해서(한때 최상층 부자들에 대한 최고세율은 91%에 달했습니다. 만일 만원을 벌었다면 9천원을 뺏어간, 어떻게 보면 거의 볼셰비키독재 수준의 과세였던 겁니다. 미국이!) 그것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 시행을 위해 사용하고 - 나눠줬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 노동조합을 탄탄하게 해 주는 등의 거의 사회주의적 정책을 폈던 겁니다.
지금의 미국에서 필요한 것은 아마 그 시대를 다시 되돌아보는 것, 그리고 여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꼭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시대, 자본과 물류의 이동이 그 어느때보다도 자유로운 이 때에 미국(과 영국)이 뿌린 성장만능주의의 죄악의 씨앗을 거두는 것은 결자해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을 우선 타국의 수출에 대한 규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일견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것보다는 자국으로의 생산시설 복귀와 일자리 창출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본의 이동이 쉬워지면 쉬워질수록 그것은 대자본을 움직이는 대기업에게 더욱 유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생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금융이자, 즉 '돈놀이'의 결과물들이 아무래도 더 쉬운 돈벌이가 될 것이고, 대주주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봉사하는 주식회사들은 결국 '배당을 높이기 위해서만' 경영을 하게 될 것이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역사는 탐욕이란 것 자체가 아무런 규제 없이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체의 에너지가 됐을 때 어떤 부작용을 동반하는가에 대해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줬으니까요.
아... 집안 한 구석에 망치질 하려다가 별 생각 다 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