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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끝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어쩌고 하니 바로 졸음이 쏟아져 옵니다. 아홉시도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눈 뜨니 오전 한 시 반입니다. 다시 자려고 하다가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 앞에 앉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보니 마음이 참 많이 답답합니다.
그렇게 밤에 인터넷 통해 이웃 마실 다니다가 들른 한 블로그 이웃님 글에서는 일본의 우경화의 배경에는 일본인들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우선 인식이 녹아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섬찟했습니다. (참조 푸른솔님 블로그: http://fishes1272.blog.me/120182265567)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도 극우화의 길을 가고 있고, 그것의 최종 목적은 일본처럼 국민들이 정치엔 관심 없고, 국가가 시키는 것이면 그것을 개인에 앞선 가치로 놓게 만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복리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고,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고 저들도 그렇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가 국민의 복리를 생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역사가 우리에겐 굉장히 짧은 것입니다. 그나마 그것조차 완벽할 수 없었던, 모자란 곳들이 꽤 많은 민주주의의 역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토털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들을 가졌고, 그 10년동안 그동안엔 누리지 못했던 '시민으로서의 권리'들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명박이 정권을 잡은 후 지난 5년동안 만들어 낸 한국은 다시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시민사회가 아닌 전체주의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한국이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다면, 그것은 그 전체주의로의 회귀에 더욱 강한 강공드라이브가 될 것입니다. 벌써 박근혜 정부에 기용될 고위 각료들의 면면을 보면 이 정부가 절대로 이명박 정부에 못지 않은 불통과 독재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CIA와 미국 핵잠수함부대 장교 출신의 이중국적자(지금은 확실히 미국 국적을 버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를 장관에 앉히려 하는 등 더욱 분명하고 강한 친미의 길을 걸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와 일본의 극우화 모두 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 운운하며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 온 것은 우리의 주권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통해 일본에 반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우경화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즉 양국이 이런 식으로 극우화의 길을 조금씩 가게 된다는 것은 우경화를 넘어서 극우가 집권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 히틀러가 제 3제국을 세워가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늘 '매파'들이 득세하게 마련이고, 이런 세력의 공통적인 주장은 '전쟁도 불사'입니다. 문제는 그 전쟁의 방향은 지금 서로 으르릉거리고 있는 한-일간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한반도는 전장화되고, 자위대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린 일본군은 다시 한반도에 진입할 것이며, 동북아의 세력 재편과 태평양 지역에서의 세력 강화라는 미국의 세계 전략 아래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직간접 개입은 과거 가쓰라 태프트 조약에서 그랬듯 확실하게 묵인되고 오히려 그런 방향으로 추진될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저는 4.19와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6월항쟁과 촛불항쟁의 경험이 있는 한국의 시민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고마운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프랑스처럼 왕의 목을 쳐버리는, 그런 세상을 바꾸는 일까지는 못했을지언정 '쟁취한 민주주의의 단 맛'을 보고, 그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닫고 목청을 올렸던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한국사회가 완전히 일본처럼 50년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버렸던 그런 절망까지는 가 닿지는 않을 거라는, 일말의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체념하고 포기하고 저항의 깃발을 내려버릴 때, 저들은 바로 파시즘의 독니를 우리에게 더 크게 드러낼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치는 우리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공동선의 방향을 잡고 그 틀 안에서 추진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국민은 국가의 소유도 아닙니다. 국가는 스스로가 국민의 공복임을 자처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주인노릇하는 저들이 자기들의 권력 강화와 유지를 위해 파시즘의 망령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함께 경계해야 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