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욕에 눈이 멀어 형과 조카와 라이벌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피의 옥좌에 오른 리처드 3세(1452~1485)
리처드 3세와 발견된 유골 권력욕에 눈이 멀어 형과 조카와 라이벌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피의 옥좌에 오른 리처드 3세(1452~1485)의 해골이 최근 런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100마일 지점에 있는 라이체스터의 한 주차장 지하에서 발굴됐다. 발굴팀이 해골을 검사한 결과 휜 등뼈와 두개골의 상처를 발견했는데 이로써 리처드 3세가 꼽추였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두개골 상처는 그가 전사한 보스워드전투에서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리처드 3세가 권모술수를 총 동원해 왕권을 탈취하는 과정은 궁정 드라마의 교본과도 같은 것으로 음모와 기만과 허위 그리고 피와 살육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이런 리처드 3세의 무자비하고 악취 나는 행적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 희곡을 바탕으로 로렌스 올리비에가 1955년에 만든 영화 ‘리처드 3세’의 서막 부분에서처럼 ‘세계사란 전설을 뺀다면 시 없는 문학이요 향기 없는 꽃이며 또 상상력 없는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그의 상상력과 사실의 복합체다.
우리가 리처드 3세 하면 대뜸 사람의 혼을 빼놓는 코브라의 옆으로 찢어진 눈과 얼굴의 균형을 깨는 큰 코 그리고 시동 헤어스타일을 한 절름발이 꼽추를 떠올리게 되는 까닭은 올리비에의 리처드 3세(사진) 탓이다. 영화에서 리처드 3세는 쪼그라든 팔을 했지만 이번 그의 해골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난 지금도 한국에서 어렸을 때 올리비에의 ‘리처드 3세’를 보고 느꼈던 공포감이 생생히 기억난다. 얇은 입술 속에서 날름대는 뱀의 혀로 토해 내는 요설과 그 것의 치사성 있는 위협 그리고 쏘아보는 독기 어린 눈과 우그러진 육체를 보면서 한기를 겪었었다. 더구나 리처드 3세의 눈과 입은 악마의 미소를 머금고 있어 그의 사악함이 마치 단도의 찌름처럼 느껴졌었다.
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올리비에의 리처드 3세는 간교하고 잔인한 유혹자요 ‘빅 배드 울프’로 그의 연기는 그의 다른 셰익스피어 영화들인 ‘헨리 5세’와 그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햄릿’의 그것을 능가하는 출중한 것이다.
난 오래 전 한국에서 김포공항 출입 기자를 할 때 영화 ‘인천’에서 맥아더 역을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때 난 올리비에에게 “당신의 리처드 3세는 너무나 잔혹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잔혹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시치미를 뗐었다.
올리비에가 제작과 감독까지 겸한 ‘리처드 3세’는 15세기 후반 글로스터 공작(후에 리처드 3세)의 형 에드워드 4세(세드릭 하워드)의 대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때 카메라가 궁정 실내에 높이 매달린 왕관을 클로스 업 하는데 권력의 상징인 이 왕관은 영화 내내 얘기의 중요 모티브 구실을 한다.
이어 글로스터 공작이 카메라를 직시하면서 왕관에 대한 욕망과 자신의 볼품없는 처지를 한탄하는 긴 독백을 한다. 그 첫 부분이 유명한 “이제 요크의 태양에 의해 우리들의 불만의 겨울은 가고 찬란한 여름이 도래했도다”로 특히 ‘우리들의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tent)은 존 스타인벡이 자기 소설 이름으로 썼을 정도로 유명하다.
요크가(백장미)의 글로스터 공작은 왕권을 탈취하기 전 먼저 100년간 이끌어온 장미전쟁의 원수 가문 랭캐스터가(홍장미)의 젊은 미망인 레이디 앤(클레어 블룸)을 유혹한다. 마치 이브를 타락시킨 뱀의 교언영색으로 레이디 앤을 유혹하는 이 장면은 황홀할 지경인데 결국 레이디 앤은 글로스터 공작의 반 구애 반 위협적 말과 행위에 함몰되고 만다. 못 믿을 건 여자로고.
그러나 에드워드 4세 사망 후 살인과 음모 그리고 이미지 개선작업을 통해 왕좌에 오른 리처드3세는 반란군과의 보스워드 전투에서 대패하고 무참히 살육된다. 집권 불과 2년만이다. 리처드 3세 사망 이후 영국은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를 배출한 튜더왕조가 시작된다.
리처드 3세가 죽기 직전 구원을 요청하며 내지르는 말이 “어 호스! 어 호스! 마이 킹덤 포 어 호스!”다. “내 왕국을 줄 테니 말을 다오!”(My kingdom for a horse)라는 이 말은 코미디에서 말을 바꿔 쓸 정도로 유명한데 주차장 지하에서 해골이 발견된 리처드 3세가 요즘에 살았더라면 “어 카! 어 카! 마이 킹덤 포 어 카!”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한편 리처드 3세의 옹호론자들은 이번 발굴을 계기로 셰익스피어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진 리처드 3세의 계몽가요 보석금제를 실시한 사회개혁자로서의 치적을 제대로 알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들은 또 리처드 3세의 잔혹 행위도 그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하면 그렇게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리처드 3세의 해골은 라이체스터 대성당에 안장될 예정이다.(미주 한국일보 2.15) <박흥진:한국일보 외신부/미주 한국일보 편집위원/서울대 졸>